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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5-진리와 자유

2016.08.28 20:26

정병선 조회 수:407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8:31-32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60828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60828_SabbathPreaching.mp3
영상다운 https://www.youtube.com/watch?v=Kajanqat8-M

(MP3 듣기: 2016년 8월28일 주일예배설교)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Kajanqat8-M

 

예수님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인들과 여러 가지 논증을 뜨겁게 주고받았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내가 이 땅을 떠날 텐데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한다, 등등 여러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 중에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고 믿는 자들도 있었습니다(v.30). 예수님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을 향해 새롭고 깊은 진실을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v.31-32).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지금까지 했던 말씀 중에 가장 유명한 말씀이고, 가장 폭이 넓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믿음과 믿음의 결과를 이야기하지 않고 나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된다’는 말씀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된다’는 말씀은 ‘내 말에 거하는 것이 곧 나를 믿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 말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에 머무른다’는 뜻이고(가톨릭성경), ‘예수님 말씀대로 산다’는 뜻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영어 성경은 NIV는 ‘hold to my teachi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잡는다, 견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자기 삶의 토대로 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말씀이 지시하는 현실(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의 현실)을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근원적인 현실 ‧ 더 위대한 현실 ‧ 더 실제적인 현실 ‧ 더 가치 있는 현실로 바라보고 그 현실을 향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지시하는 현실을 내가 살아야 할 진정한 현실로 인식하고 그 현실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 말씀을 구원 얻는 방편(수단)이나 복을 받는 방편으로 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성실하게 율법을 지킨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영생을 얻는다고 하니까 예수님 믿고, 복을 받는다고 하니까 예수님 믿는 것은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나 그게 그거 같아 보입니다. 도진개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릅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은 예수님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에도 관심이 없고,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하나님나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복 받고,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시쳇말로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영생을 예로 들어보죠.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옳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영생이라는 떡고물이 탐나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일까요? NO.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은 그러지 않아요.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고,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하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나님나라 방식대로 살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연습을 합니다. 물론 많이 실패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고 연습합니다. 공부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고 진짜 예수님 제자예요. 교회 열심히 다니고, 주차 봉사하고, 성가대 활동하고, 여전도회 활동하고, 제자훈련프로그램을 마친 자가 제자가 아니고, 가정이나 직장(학교)에서 하나님나라 방식대로 살기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기 욕망을 극대화하고 채우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을 통해 자기 욕망을 죽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주일날 예수님을 잘 섬기고 예수님 잘 섬겼으니 복 주실 거라고 믿고 생활하는 자가 제자가 아니고, 매일매일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렇게 달라요.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까,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입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자가 많을까요,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가 많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야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을 믿는 동기와 목적을 깊이 추적해보면 예수님을 믿는다기보다는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보다는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눈독을 들이는 자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인간이 그래요. 인간은 참으로 부패한 존재라서 예수님을 믿는 일까지도 자기중심적으로 바꿔버립니다. 순전하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어떻게든지 예수님을 이용하려 듭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기 유익을 챙기려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할 때라야 참으로 나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나를 이용하지 말고 믿으라’고 그 말씀을 한 겁니다.

여러분께서도 예수님을 이용하려 들지 마십시오.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눈독을 들이지 마십시오. 단지 예수님을 믿으세요. 순전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씀 안에 거하세요. 지금 당장에는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 앞서는 것 같지만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는 예수님 안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유업으로 상속받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마7:23)고 내침을 당하는데 반해, 예수님을 믿은 자는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나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마25:21)고 환대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은 자들에게 제일 먼저 ‘내 말에 거하는 것이 곧 나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v.32).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 복, 예수님 말씀에 거하면 받게 되는 두 가지 복을 말했습니다. 진리를 알게 되는 복과 자유하게 되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거하면 진리를 알고 자유하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복이야말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 중에 최고의 복입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복과도 비교되지 않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가치있고, 가장 영광스러운 복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아는 복부터 살펴봅시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보통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원리, 보편타당한 원리를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진리를 ‘참된 이치’, ‘우주의 근원적 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의미의 진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진리는 ‘자유하게 하는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진리는 자유하게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보편타당한 이치로서의 진리, 우주의 근원적 원리로서의 진리는 사람을 자유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옥죄고 가둡니다. 철학적 진리이든, 역사적 진리이든, 경험적 진리이든, 심리적 진리이든, 종교적 진리이든, 국가적 진리이든 세상의 모든 진리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옥죄고 가둡니다. 이데올로기도 사람을 가두고, 국가도 사람을 가두고, 지식도 사람을 가두고, 기술도 사람을 가두고, 심지어 가족도 사람을 가두고, 사랑까지도 사람을 가둡니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인간은 항상 진리의 이름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가둬왔습니다. 진리의 이름으로 서로 전쟁했고, 진리의 이름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진리의 이름으로 교회가 거짓을 설파했고, 진리의 이름으로 청교도들이 인디언을 짓밟았고, 진리의 이름으로 아버지가 자녀를 지배했고, 진리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습니다. 지금도 자본의 자유(시장의 자유)라는 기치 아래 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고, 소비가 행복이라는 기치 아래 환경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예외가 없어요. 세상의 모든 진리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옥죄고 가두고 파괴해왔습니다. 진리가 강고하면 강고할수록 더더욱 강하게 옥죄고 가두고 파괴해왔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한 마디로 진리의 이름으로 죄악을 저지른 역사입니다. 진리의 이름으로 옥죄고 가두고 파괴한 역사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는 참 진리가 아닙니다. 참 진리는 자유하게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했으니까 진리는 자유하게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는 자유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그림자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참 진리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자유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진리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진리처럼 생각된다 하더라도 자유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진리일 수 없습니다. 오직 자유하게 하는 것만이 진리이고, 자유하게 할 때만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 진리일까요? 무엇이 자유하게 하는 진리일까요? 자유하게 하는 진리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멈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무슨 말입니까? 나는 자유하게 하는 자로 이 땅에 왔다는 말입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옳습니다. 예수님은 자유하게 하는 자로 이 땅에 왔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온 세상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억압과 갇힘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보편타당한 이치도 아니고, 우주의 근원적 원리도 아니지만 모든 것을 자유하게 하셨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따로 있고,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과 진리가 하나에요. 예수님 자신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인 진리만이 사람을 자유하게 합니다. 자유는 진리의 열매입니다.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말을 뒤집으면 ‘자유가 너희를 진리하게 하리라’가 됩니다. 이것도 말이 됩니다. 말이 되는 정도가 깊은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하게 하리라’는 말은 ‘자유가 있어야만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유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진리의 길을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자유가 없으면 절대로 진리의 길을 갈 수 없어요. 조금만 생각해보십시오. 뭔가에 막혀 있고, 뭔가에 눌려 있고, 뭔가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진리의 길을 가겠습니까? 돈의 지배를 받고 있고,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진리의 길을 가겠습니까? 자유가 없으면 절대로 진리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자유만이 우리를 진리하게 합니다. 진리만이 자유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유만이 진리하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너에게 구애받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일까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치며 자기 길을 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너에게 구애받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는 자유는 오만이요 무례요 방종이요 폭력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는 오만한 자유, 무례한 자유, 방자한 자유, 무법한 자유, 특권인 자유가 넘칩니다. 갑질하는 자유,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치는 자유가 넘칩니다. 그런데 그런 자유는 애당초 자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유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는 진리와 동행하는 자유, 진리와 함께 사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답게 사는 자유입니다. 오만한 자유가 아니라 온유한 자유입니다. 무례한 자유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입니다. 무법한 자유가 아니라 진리에 갇힌 자유입니다. 특권인 자유가 아니라 섬기는 자유입니다. 죄 짓는 자유가 아니라 죄 짓지 않는 자유입니다.

결국 진리와 자유는 떨어지면 안 되는 짝꿍입니다. 진리와 자유는 따로 놀 수 없어요. 진리는 반드시 자유라는 열매를 맺어야 하고, 자유는 반드시 진리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와 자유가 짝꿍으로 묶여 있어야 돼요. 그래야 참 진리이고, 그래야 참 자유입니다. 그리고 참 자유에 이른 자는 진리에 능동적인 순종을 합니다. 참 자유에 이르지 못한 자는 마지못해 수동적인 순종을 하지만 참 자유에 이른 자는 능동적인 순종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진리와 자유는 짝꿍으로 묶여 있지 않습니다. 제각각 따로 놉니다. 진리는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는 진리를 거스릅니다. 세상 살기가 힘든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온통 진리로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로 진리를 거스르기 때문에 세상 살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약 자유하게 진리와 진리로 나아가는 자유가 온 세상에 넘친다면 사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즐거움이요 행복일 것입니다. 살면 살수록 힘이 날 것입니다. 한없이 창조적이고, 한없이 풍요롭고, 한없이 조화롭고, 한없이 아름다운 삶을 살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구원의 삶입니다. 자유하게 진리와 진리로 나아가는 자유가 어우러진 삶이 구원의 삶이고 하나님나라 삶입니다.

 

여러분, 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진리와 자유가 어우러진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진리와 자유가 어우러진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가치있고,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된 삶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리와 자유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삶이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복된 삶,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으로 초대했습니다. 참으로 복된 초대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초대입니다. 여러분, 이 복되고 아름다운 초대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진리와 자유가 어우러진 삶을 예수님께 배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