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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9-인생 최고의 사명

2016.04.17 18:49

정병선 조회 수:402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3:1-8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60417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60417_SabbathPreaching.mp3
영상다운 https://www.youtube.com/watch?v=WzsAdS61mC4

(MP3 듣기: 2016년 4월17일 주일예배설교)

동영상 보기 --- https://www.youtube.com/watch?v=WzsAdS61mC4

 

‘사명’이라는 단어는 제가 즐겨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사명’, 그러면 지나치게 옥죄는 느낌, 너무 엄숙한 느낌이 들고,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 전체가 사명 아닌 게 없기 때문에 특별히 ‘이것이 사명이다’라고 말하는 걸 삼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에 거의 말하지 않는 ‘사명’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인생 최고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인생 최고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 부자가 되는 것, 꿈을 성취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 등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이런 것들도 다 멋지고 매혹적인 일이긴 합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굶주림을 해결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세상을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로 변화시키는 것도 절실하게 필요한 일들입니다. ‘사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인생 최고의 사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인생 최고의 사명은 이런 것들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본질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조금만 가꾸고 노력하고 응용하면 먹고 살 수 있도록 먹을거리서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준비해놓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걸 보십시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다 하나님이 창조해놓은 것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지 않은 지구 위에서, 우리가 만들지 않은 공기와 물을 호흡하고 마시며, 우리가 만들지 않은 철과 광물을 이용해 자동차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것 하나도 거저 된 것은 없습니다. 쌀 한 톨도 인간의 수고가 가미되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현대 문명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눈부신 과학기술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도전하며 인생을 불태웠기 때문에 도시가 발전하고, 교통수단이 발전하고, 예술이 발전하고, 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발전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인격은 거의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사람의 마음과 인격은 거의 발전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몇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점점 퇴보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와 비교해봅시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더 넓어지고 유연해졌을까요? 우리의 인내심이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더 커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집 평수는 넓어졌지만 마음의 평수는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인내심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욕심, 이기심, 거짓, 교활, 사기, 교만도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더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남녀 평등의식이라든지 신분상의 차별 철폐 등 좋아진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사람의 마음과 인격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발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삶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식량 문제입니까? 공해 문제입니까? 핵문제입니까? 부의 불균형 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이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왜 불거졌습니까? 어디에서 비롯됐습니까? 지구촌의 모든 문제는 다 사람 때문에 빚어졌습니다.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잘못돼서 빚어졌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했습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나온다(막7:15-23). 옳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뿌리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이 뭐겠습니까? 당연히 사람의 마음과 인격을 돌보고 키우고 발전시키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가꾸고 인격을 온전케 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첩경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가꾸고 인격을 온전케 하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첩경이라면 사람의 마음을 가꾸고 인격을 온전케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긴급한 사명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각 자기 마음을 가꾸고 인격의 도량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도전 아니겠습니까? 억만장자가 되고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보다도 자기 마음을 가꾸고 인격을 키우는 것이 몇 백 배, 몇 천배 더 숭고하고 값진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 마음을 가꾸고 인격의 도량을 키우는 것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값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삼장에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서 배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3:2).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도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진정한 삶,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배우고 싶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말을 듣고 좀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3:3). 니고데모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사람이 늙었는데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단 말씀입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3:4). 그러자 예수님은 또 다시 선문답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다 이와 같다.”(3:5-8).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생명으로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계, 사회적인 세계만 볼 뿐이지 하나님나라를 보지는 못한다, 하나님나라를 보려면 영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 출생부터 살펴봅시다. 첫 번째 출생은 무(無)에서 유(有)로의 출생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본래 아무 것도 없는 무였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자와 정자가 합해져서 나라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본래는 아무 것도 없는 무(無)였는데 유(有)가 된 겁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에서 뭔가가 있는 유(有)의 세계로 출생한 겁니다. 이것이 첫 번째 출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출생만으로는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보려면 또 한 번의 출생이 필요한데 두 번째 출생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령의 방식으로 출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성령의 방식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알 수가 없고, 사람이 조작할 수도 없는 방식입니다. 사람이 두 번째 출생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출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무와 같은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로 출생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것입니다. 사람은 두 번 출생해야 한다, 한 번은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로 출생해야 하고, 또 한 번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출생해야 한다, 피조물의 세계에서 창조자의 세계로 출생해야 한다, 그래야 나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처럼 하나님의 눈, 하나님나라의 눈을 가지고 세상만물과 세상만사를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 출생한 사람의 마음이나 인격과는 다른 차원의 마음과 인격을 가진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성공을 꿈꾸면서 사는데 성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인격이 변화하고 성숙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에서 말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가꾸고 인격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도전해야 할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바울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라.”(엡4:13)고 도전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성공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성공, 사회적인 성공, 사업적인 성공, 정치적인 성공, 전문인으로서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성공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쥐어지지도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으니까 이런 성공을 꿈꾸는 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쥐어지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이런 성공을 꿈꾸며 노력하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고, 진짜 신앙으로 사는 사람이고,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고, 알짜배기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시인 권대웅은 [하루]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눈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눈 없이 햇빛을 본다면 눈부심보다 먼저 따뜻함을 느낄 것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움보다 먼저 향기를 느낄 것이고,

얼굴을 보면 인상보다 먼저 마음을 느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온통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착합니다만 사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고귀하고 소중합니다. 성공도 눈에 보이는 성공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공이 훨씬 고귀하고, 사람도 눈에 보이는 외모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훨씬 더 소중합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인격이 훨씬 더 위대합니다.

여러분께서도 한두 번쯤 다 경험하셨을 겁니다. 나름 성공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도 많습니다. 지식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 됨됨이가 형편없습니다. 거만하고 거들먹거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보이던가요? 아마 추해보였을 겁니다.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맞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을 거머쥐는 건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멋진 작품으로 빚어가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이 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자라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오래 전 중국의 장자가 숨을 거둘 때 이야기입니다. 장자가 숨을 거두려 하자 제자들이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하려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나의 관이요, 해와 달이 내 옆에서 짤랑대는 구슬이고, 행성과 별자리들이 내 주위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이며, 만물이 밤을 새워 나를 애도할 텐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이냐? 모든 게 넘치게 준비되어 있으니 쓸데없는 일 하지 마라.” 그러자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의 시신이 까마귀나 솔개에게 먹히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자 장자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런가? 땅 위에 놓아두면 까마귀나 솔개가 먹을 것이고, 땅 밑에 누우면 개미나 벌레가 먹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먹힐 텐데, 너희들은 왜 새들에게 인색한가?”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해머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자가 정말 큰 사람인지를 발견하고 통쾌했습니다. 그의 생각이 한없이 호방하고 탁 트여 있는 것을 보면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저는 한 동안 장자를 즐겨 읽었습니다. 제가 장자를 즐겨 읽었던 것은 장자를 읽으면 장자가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자를 읽으면 장자가 살아서 제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습니다. 제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고정관념을 보게 하고,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붙들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버려야 할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보게 해줬습니다.

사실 장자뿐 아닙니다. 제가 이런저런 책을 읽는 것도 사실은 제 안에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항상 편견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만일 그 책을 읽지 않았으면 그전까지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 고정관념인 줄도 모르고 그 안에 갇혀 살 텐데 그 책을 읽은 덕분에 고정관념의 벽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제가 독서를 통해 은혜를 받을 때도 새로운 깨우침을 얻고 고정관념이 깨질 때입니다.

 

사람이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절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마음과 인격의 성장을 가로막는 최고의 장애물입니다. 이 장애물을 깨야 합니다. 끊임없이 편견과 고정관념의 벽을 무너뜨려야만 마음이 새로워지고 인격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껍데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 진실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생 최고의 사명입니다. 사단의 종노릇하는 자아가 날마다 죽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이고,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도 사실은 이것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 되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용기를 내어 이 길을 걸어가십시오. 세상이 알아주지 않지만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십시오. 서로 지지해주고 격려하면서 이 사명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참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인생의 사명이고,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