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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8:21-30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60821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60821_SabbathPreaching.mp3
영상다운 https://www.youtube.com/watch?v=y7jdkfky2jA

(MP3 듣기: 2016년 8월21일 주일예배설교)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7jdkfky2jA

 

예수님은 초막절에 이 땅을 떠난다는 말을 두 번 했습니다. 7장에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다’고 길게 말했고(7:33), 8장에서 ‘내가 가리니’라고 짧게 말했습니다(8:21). 예수님이 이렇게 ‘간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한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아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때(이 땅을 떠날 때, 죽을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한 것도 사실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간다’는 말씀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예수님의 목적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간다’는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7장에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는 오지도 못하리라.”(7:33-34)고 말씀했고, 8장에서는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8:21)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공통되는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가 간다. 둘째, 내가 가면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셋째,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에 대한 진실과 인간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고, 예수님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럼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먼저 예수님에 대한 진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대인들에게 거부와 배척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버림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거부하고 죽일 사람들을 향해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가리니 너희들이 나를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8:21).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인 자들이 예수님을 찾는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인 자들이 예수님을 찾을 리도 없거니와 예수님께서 그런 뜻으로 말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가리니 너희들이 나를 찾을 것’이라는 말은 ‘너희들이 지금 나를 오해하고 거부하고 있지만 나는 너희들이 찾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너희들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찾을 메시아가 바로 나’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내가 바로 너희가 찾는 그 메시아인데 너희가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대 당국자들과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거부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이 찾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아입니다. 지금 저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려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저들조차도 메시아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유대인뿐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빛이신 메시아, 생명이신 메시아를 찾습니다. 호화로운 왕궁에 사는 자도 매시아를 찾고, 억만장자도 메시아를 찾고, 노숙하는 자도 메시아를 찾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자도 메시아를 찾고, 행복을 노래하는 자도 메시아를 찾고, 청소년도 메시아를 찾고, 노인도 메시아를 찾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텅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메시아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찾고 있는 그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더라도 사람들이 찾아야 하고, 실제로 찾는 그 메시아입니다. 이것이 가장 근원적인 예수님의 진실입니다.

 

이제 인간에 대한 진실을 살펴봅시다. 인간에 대한 진실은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 죽는다’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수많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생각하는 갈대다, 사회적 존재다,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다, 공부하는 존재다, 온갖 문제의 근원이다, 등등 많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근원적인 진실은 뭘까요? 인간은 메시아를 찾으면서도 메시아를 정죄하고 죽이는 존재입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빛을 찾으면서도 빛을 외면하고, 빛을 사모하면서도 어둠을 좋아하는 존재입니다. 심지어 빛을 어둠이라고 생각하고, 어둠을 빛이라고 착각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도 생명을 갈망하고 희망합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생명을 거부하고 죽음을 쫓습니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데 살겠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죽음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심지어 생명을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죽음을 생명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찾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찾는 메시아가 오자 어떻게 했습니까? 정죄하고 죽였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자기들 앞에 있는데 그 빛을 어둠이라고 정죄하고 죽였습니다. 유대인들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모든 인간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지금도 진리를 외치면서 진리 아닌 길을 가고, 빛을 찾으면서 빛을 외면하고, 생명을 구하면서 생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진짜 빛 진짜 생명은 거부하고, 가짜 빛 가짜 생명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인간이 빛을 찾는 것 같고, 진리를 사랑하는 것 같고, 생명을 희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빛을 외면하고, 진리를 거북해하고, 생명을 짓밟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을 향해 말씀했습니다.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예수님은 ‘너희 죄 가운데서 죽는다’고 했을 때 ‘죄’를 복수로 말하지 않고 단수로 말했습니다. 즉 살인, 강도, 사기, 거짓, 시기, 질투 등의 죄를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죄를 말했습니다. 그 죄가 뭘까요? 단수로 말하는 죄는 빛이신 예수님, 생명이신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는 죄를 가리킵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는 죄가 가장 근원적인 죄요 오직 하나인 죄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죄 가운데서 죽습니다. 사람이 늙고 병들고 연약해서 죽는 게 아니에요.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죄로 인해 죽습니다.

물론 구원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요3:16). 또 예수님의 말을 듣고 또 예수님을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요5:24).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내가 그인 줄(너희가 찾는 메시아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8:24). 예, 인간은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죄로 인해 죽습니다. 희대(稀代)의 영웅호걸도, 절세의 미인(美人)도, 지혜와 덕을 쌓은 현인(賢人)도, 자기가 없는 무애인(無碍人)도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죄로 인해 죽습니다.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빛을 거부함으로써 죽음으로 내달리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것이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진실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이 가는 곳에 사람은 갈 수 없다는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초막절에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고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고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어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가 그리스로 가서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들을 가르치려는가?’라고 수군거렸고, 두 번째는 ‘저가 자결하려는가?’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부가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8:23).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왔다가 거기로 간다는 말일까요? 내가 가는 곳은 100억 광년보다 더 먼 곳이어서 너희는 올 수 없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장소나 공간의 문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차원의 문제를 말했습니다.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다’는 말은 내가 온 곳과 너희가 온 곳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세계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선이 일차원이고, 가로와 세로가 있는 면은 이차원이고, 가로 세로에 높이가 더해진 공간은 3차원이고, 3차원 공간에 시간이 더해지면 시공간이라는 4차원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고 있는 이 세계는 4차원 세계입니다. 우리 모두는 4차원 세계에서 태어났고, 4차원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4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아래에서 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위에서 났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났다’는 말은 4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에서 왔다는 말입니다. 그 세계가 정확하게 몇 차원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4차원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세계에서 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온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4차원 이상의 세계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4차원 이상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비록 4차원 세계에 몸담고는 있지만 4차원 이상의 세계가 예수님 안에 있고, 실제로 4차원 이상의 세계를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도 예수님이 4차원 이상의 세계를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적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의 문제입니다.

 

사실 차원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수학자들은 11차원의 세계까지 상정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차원에 대한 공부를 한 게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1차원은 2차원에 속하지만 2차원은 1차원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논리로 3차원은 4차원에 속하지만 4차원은 3차원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2차원은 1차원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1차원 세계에서는 2차원 세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2차원 세계에서는 3차원 세계가 이해되지 않고, 3차원 세계에서는 4차원 세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4차원 세계에서는 4차원 이상의 세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 세상에 속했으나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4차원 이상의 세계에서 왔고, 4차원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또 조금 있으면 4차원 이상의 세계로 갈 것이기 때문에 나를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나 있는 곳에 올 수도 없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만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8:14)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은 4차원에 속한 것만 알지 4차원 이상에 속한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천국(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도 장소(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의 문제로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태양계 밖의 어떤 우주 공간이거나 혹은 우주 밖의 어떤 공간일 거라고들 생각하고, 또 육신이 죽으면 영혼이 가는 특별한 공간이라고들 생각하는데 천국은 그런 특별한 공간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과 다른 어떤 시공간을 뜻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차원이 다른 세계를 뜻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세계, 그것이 몇 차원인지는 모르나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보다는 훨씬 높은 차원의 세계를 천국(하늘나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이해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천국을 이해할 수 없어요. 아무리 믿음이 좋고 영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천국을 이해할 수 없어요. 천국은 차원이 다른 세계인데 4차원에 사는 우리가 무슨 수로 이해하겠습니까. 이해 불가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천국이 어떤 세계인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부활하게 되면 그때는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육신이 죽으면 영혼이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절대로 4차원의 세계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고 지혜가 깊다 해도 4차원 안에서 사는 것이지 4차원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4차원의 세계는 죽음이 왕 노릇하는 세계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계입니다. 생존 자체가 죽음과 연계되어 있어요. 죽음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 내 존재’라고 규정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죄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8:21). 무슨 말인가 하면, 너희는 세계 내 존재다, 죄 가운데서 죽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계 내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위에서 났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고 승천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갔습니다. 태양계 밖의 어떤 우주 공간이나 우주 밖의 어떤 공간으로 날아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닌 딴 세상으로 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로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다고 표현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아닌 딴 세상으로 가신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을 품고 있는 차원 높은 세계, 즉 하나님나라로 가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한다.”(8:21)고 말씀하신 그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홀로 고고하게 가신 게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다 품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17:16). 그렇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이미 하나님나라 백성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은 자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있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몸은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입니다. 사람의 능력이나 지혜로는 절대 갈 수 없는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이 충만한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 여러분께서도 날마다 위의 것을 찾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미 4차원 세계를 넘어섰으니 4차원 세계에 연연하지 마시고 위의 것을 찾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