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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2-예수는 그리스도인가

2016.08.07 17:04

정병선 조회 수:392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7:32-44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60807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60807_SabbathPreaching.mp3
영상다운 https://www.youtube.com/watch?v=tcFn317f7fE

(MP3 듣기: 2016년 8월07일 주일예배설교)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tcFn317f7fE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오고갑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벌인 논쟁의 핵심 이슈는 예수였습니다. ‘예수가 누구냐’, ‘예수가 그리스도냐? 아니냐?’하는 것이 논쟁의 핵심 이슈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냐 아니냐 하는 논쟁에서 가장 뜨겁게 논란이 된 부분은 ‘예수가 난 곳을 알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려면 누구도 난 곳을 알지 못해야 하는데 예수는 나사렛 출신이요 요셉의 아들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예수님은 ‘내가 나사렛 출신이고 요셉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데서 온 그리스도’라고 주장했습니다(v.28-29).

쉽게 말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너희는 자꾸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일 뿐이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더 큰 진실이 있다, 나는 부모님의 유전자를 통해 오지 않았다, 나는 보냄을 받았다, 나를 보내신 분이 계신다, 하지만 너희는 그 분을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주장하는 대로 나는 그리스도다, 라는 말입니다. 어쨌든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벌어진 핵심 논쟁은 ‘예수가 누구냐’, ‘예수가 그리스도냐 아니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쟁은 도무지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변증을 해도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예수의 난 곳을 안다며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봅시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평행선을 달렸을까요? 왜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까지 평행선을 달린 걸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인식이 지극히 마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인식은 오히려 자연적인데 비해 유대인들의 인식은 지극히 마술적이었기 때문에 접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겁니다. 함께 확인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떻게 왔습니까? 슈퍼맨이 원인모를 곳에서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듯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오셨나요?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적인 방식으로 왔습니다. 비록 성령(하나님의 방식)으로 잉태되기는 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지내고 해산하는 과정을 거쳐 핏덩이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서도 엄마의 젖을 먹으며 자라는 성장과정을 거쳤습니다. 30년 동안 요셉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난 곳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난 곳이 없다는 것은 부모도 없고 가족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슈퍼맨이 원인모를 곳에서 나타나듯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마술적인 사고방식인데 어쨌든 유대인들은 하늘에서 온 자는 어머니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신의 과정, 출산의 과정, 성장의 과정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가 버젓이 있습니다. 임신의 과정, 출산의 과정, 성장의 과정을 온전히 거쳤습니다. 그러니 그런 자를 어떻게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마술적인 사고에도 맞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에도 맞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설명을 해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예수님의 변증이 합리적이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출생했는데 하늘에서 왔다, 하늘에서 왔는데 어머니 뱃속에서 출생했다는 것은 마술적인 사고에도 어긋나고, 합리적인 사고에도 어긋납니다. 한 마디로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복음서 기자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늘어놓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출생했는데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고, 하늘에서 왔는데 어머니 뱃속에서 출생했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사실이니까, 논리적으로는 모순이지만 그것이 사실이니까 사실 그대로 말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독특함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책이면서 인간을 넘어선 계시의 책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와 행동이 계시된 책입니다. 성경은 누구나 열어볼 수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나에게 열려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책이고, 우리 앞에 놓인 책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말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 진실을 말하는 책입니다. 성경은 이성의 책이면서 동시에 이성을 넘어선 믿음의 책이고, 과거의 책이면서 영원한 현재의 책이고, 닫혀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열려 있는 책이고, 세상 속에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세상 위에 있는 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안에는 모순과 역설이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모순과 역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근원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메타포도 있고, 비유도 있고, 시(詩)도 있고, 지혜문학도 있고, 신화적인 기술도 있고, 묵시도 있습니다만 그 모든 것 속에 근원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철학적인 논리와 종교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행동,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행동을 완전하게 체현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써 하나님이었습니다. 땅에서 태어남으로써 하늘에서 왔습니다. 세상의 어둠을 폭로함으로써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율법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약하게 됨으로써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처참하게 패배함으로써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놀랍게도 성전을 무너뜨리라고 외쳤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습니다. 유대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며 내쳤습니다. 이 모두가 모순이자 역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5:3).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마5:4).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마5:10).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다(마18:4).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5:44). 생명을 인도하는 문은 좁다(7:14).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마19:23).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20:27).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막2:17). 정말 구구절절이 모순과 역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말과 행동은 세상의 어떤 사상체계에도 들어맞지 않았고, 어떤 종교체계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유대인의 종교체계에까지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오해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이기는커녕 하나님을 사칭한다는 정죄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예수가 누구냐’하는 논쟁도 점차 뜨거워져 갔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다는 자들 사이의 논쟁이 점차 격화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드디어 예수를 잡도록 행동대원을 파견하기에 이르렀습니다(v.32).

 

하지만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 돌아가겠노라. 그렇게 되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고,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할 것이다”(v.33-34). 어떻게 보면 매우 뜬금없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실컷 ‘어디서 났느냐’는 것 가지고 뜨겁게 논쟁했는데 갑자기 ‘어디로 돌아간다’고 말하니까 영 생뚱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은 생뚱맞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디서 왔느냐’는 것 가지고 논쟁한 것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이라고 봐야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를 통해 ‘어디서 왔는지’를 변증하려 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고로 ‘어디서 왔는지’와 ‘어디로 가는지’는 한 통속으로 묶여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온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왔다가 가고, 왔다가 가는데 오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는 법은 없습니다. 오직 온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땅에서 난 것은 땅으로 돌아가지 하늘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하늘에서 온 것이라야 하늘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연의 법칙에 근거하여 말씀했습니다. ‘나는 곧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그렇게 되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고,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할 것이다.’(v.33-34). 이 말은 결국 ‘나는 요셉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디로 가는지’를 통해 ‘어디서 왔는지’를 변증한 말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너희가 알지 못하니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하니 나는 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수많은 오해와 박해 속에서도, 죽임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나는 그리스도’라고 변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변증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들을수록 의혹만 증폭됐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인가? 헬라인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처럼 예수도 예루살렘을 떠나 헬라인들 속으로 들어가 가르칠 터인가?’(v.35)라고 의아해하면서 예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도무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초막절의 마지막 날이 왔습니다. 초막절은 칠일 동안 진행되는데 마지막 일곱째 날이 왔습니다. 초막절은 스가랴서가 말하는 ‘여호와의 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스가랴서 9-14장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여호와의 승리에 대해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실 것인데(9:9), 그는 다윗의 집을 위해 한 샘을 여시고 예루살렘을 깨끗케 하실 것이다(13:1), 생수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솟아나 여름이건 겨울이건 쉬지 않고 지중해와 사해로 흘러들어갈 것이다(14:8), 모든 대적들이 멸망할 것이고 사람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초막절을 지킬 것이다(14:16), 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초막절에 성대한 물 붓기 의식을 행했습니다. ‘명절 끝날’에 흰옷을 입은 제사장 행렬이 실로암 연못으로 물을 공급하는 기혼 샘으로 내려가서 금으로 만든 물동이에 물을 채워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성가대는 제사장 행렬을 따르며 이사야서 12장 3절 말씀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3)를 합창했습니다. 물이 성전에 도착하면 성전 뜰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편 113-118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제사장이 제단으로 올라가 은으로 된 깔때기 속으로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니까 초막절은 한 해의 추수를 마치고 드리는 추수감사절이면서 동시에 온 세상에 구원의 생수가 흘러가는 종말론적인 여호와의 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신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금으로 만든 물동이에 주목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예수님은 힘차게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v.37-38).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생수의 원천이라는 말입니다. 스가랴는 생수가 예루살렘으로부터 흘러나올 것이라고 했고(슥14:8), 에스겔은 성전 아래에 있는 반석으로부터 물이 나와 흐르는 것을 보았다(겔47:1)고 했는데, 예수님은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성전의 반석이 바로 나다, 내가 바로 온 생명을 살리는 생수의 강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개로 와서 마셔라, 그러면 그 배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내가 바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할 왕이고, 초막절이 가리키는 종말론적인 여호와의 승리의 날이 나와 함께 도래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시종일관 이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나는 선지자들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것이 예수님의 핵심 증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증언에 목숨을 걸었고, 이 증언 때문에 미움과 멸시를 받아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박해를 받으며 죽어간 것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 한 마디 고백을 철회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극심한 박해를 받고 죽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 증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동의와 부정을 받은 증언입니다. 동의와 부정 사이에 대립이 가장 극심했던 증언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이 증언은 수많은 사람들이 멸시하고 박해한 증언이자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붙잡은 증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증언과 고백에 담긴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그저 머리로 인정하고 입술로 내뱉고 있는데,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증언과 고백은 그렇게 시시하거나 가벼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증언은 우리의 삶 전체로 밀고 나가야 하는 고백입니다. 목숨을 걸고 붙잡아야 하는 고백입니다. 지금은 이천년 전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합니다만, 예수가 하나님으로서 인간이요 인간으로서 하나님이라는 사실, 어머니 뱃속에서 출생했지만 하늘에서 왔고 하늘에서 왔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하거나 멸시합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예수가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신화적인 방식으로 기술한 것이지 사실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똑똑한 인간의 판단일 뿐입니다. 인간은 너무 똑똑해서 예수님의 증언을 믿지 않습니다.

 

욥도 일찍이 말했습니다.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려졌으며,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욥28:12-13, 20-22). 잠언도 말했습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한다(잠1:20-22). 지혜가 불러도 듣기를 싫어하고, 손을 펴도 돌아보지 않는다(잠1:24-25).

진실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에 감추어진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습니다. 멸시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온갖 멸시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영원 전부터 영원히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의 지식인이나 철학자나 종교인이나 지혜자는 도무지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가 누구냐?’하는 논쟁, ‘예수가 그리스도냐? 아니냐?’하는 논쟁은 예수님 당시에도 최고의 논쟁거리였지만 지금도 최고의 논쟁거리인 역사상 가장 뜨거운 화두입니다. 지금도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에서, 심지어 기독교인과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냐? 아니냐?’하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여,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는 누구입니까? 그저 훌륭한 선생입니까? 위대한 기독교 창시자입니까? 아니면 온 세상의 그리스도(메시아)입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다’(Jesus is Christ), 이것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고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아’를 뜻하는 헬라어인데 ‘기름부음 받은 자’,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진리(신앙)는 ‘예수는 구원자’라는 한 마디 속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천년 전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를 온 세상의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의 증언과 사도들의 증언에 목숨을 건 자들입니다. 삶 전체로 이 증언을 밀고나가는 자들입니다. 이 증언이 모순과 역설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멸시와 박해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삶 전체로 이 증언을 고백하며 밀고나가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