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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5.02.22 21:16

정병선 조회 수:882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4:27-38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50222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50222_SabbathPreaching.mp3
영상다운 https://www.youtube.com/watch?v=dkvAcJERSs0

     (MP3 듣기: 2015년 2월22일 주일예배설교)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dkvAcJERSs0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아동문학가로 살았고, 우리말 교육과 글쓰기 교육에 전념하셨던 이오덕 선생님이 말년에 쓴 시중에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나] 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나

고양이 한 마리도 주워오지 못했다

아이들을 살린다는 핑계

아이들은 어떻게 살렸나

사람을 살려서는 뭐 하자는 건가

모든 것을 죽이고 스스로 죽고 말 사람을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있나

병아리 한 마리, 매미 한 마리 살리지 못하면서

 

이 시를 읽으면서 새삼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나’,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를 돌아봤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소위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들이 대부분 사람 죽이고 세상 죽이는 일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배우지 못한 사람보다도 배운 사람들이 더 많이 속이고, 더 크게 망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뭔가를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결국은 생명을 죽이고 자연을 소비하며 살지 않습니까? 이오덕 선생님께서도 사람들이 열심히 배워서 하는 짓거리들이 사람 죽이고 세상 죽이는 것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사람을 살려서는 뭘 하자는 건가’하는 질문을 던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흔히 자동차를 생산한다, 컴퓨터를 생산한다, 핸드폰을 생산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조금 깊이 따지고 들어가 보면 사실 생산이 아닙니다. 소비입니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많은 원자재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철판, 구리, 유리, 고무, 등등 수많은 재료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동차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일단 소비입니다. 만들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자동차가 달리려면 기름을 태워야 합니다. 기름을 태우면 배기가스로 공기가 오염됩니다. 공기가 오염되면 사람과 짐승과 나무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컴퓨터도 그렇습니다. 컴퓨터가 굉장히 많은 유익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많은 학생들이 게임에 중독돼서 아이들의 정신과 영혼을 황폐하게 합니다. 채팅 때문에 가정이 깨지기도 하고, 인간관계가 단절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자동차를 생산한다, 컴퓨터를 생산한다 하는 것들이 사실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요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생산하는 것은 오직 자연 밖에 없습니다. 자연만이 생산을 합니다. 자연은 소비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끝없이 생산합니다. 끝없이 생산하고, 끝없이 주고, 끝없이 정화시킵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은 생산을 합니다. 자연과 농부를 빼면 나머지는 대부분 소비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진짜 생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농부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윤구병이라는 분인데, 이 양반은 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20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50이 넘자 철이 들었는지 정신이 돌았는지 철학 교수를 때려 치고 전북 부안의 변산이라는 낯선 곳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아주 쬐끄맣게 대안학교를 열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농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을 기르고 사람을 기르면서 살겠다는 뜻이겠지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뭘 위해서 삽니까? 결코 쉽지 않은 인생인데, 정말 산다는 것처럼 어렵고 고단한 일이 없는데 이처럼 어렵고 고단한 삶을 무엇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사십니까? 뭘 위해서,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현대인은 이런 질문을 싫어합니다. 아주 고리타분하게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 취직하거나 승진하는데 걸림돌일 뿐이라며 취급도 안 합니다. 그런 질문은 배부르고 할 일 없는 놈들이나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립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묻고 토론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질문이고, 예수님에게 물어야 할 질문도 바로 이 질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10대에도 물어야 하고, 20대에도 물어야 하고, 40대에도 물어야 하고, 60대에도 물어야 하고, 80대에도 물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빠지면 인생도 신앙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 이 질문이 없으면 인생도 신앙도 인격도 삶도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이 없으면 삶의 모든 것이 엇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에게도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항상 이 질문 앞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수가라 하는 동네를 지나가다가 야곱의 우물이 있어서 쉬는 중에 물을 길러 나온 여자를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간 사이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으로 초청했습니다. 먹을 것을 사러 간 제자들이 돌아와 점심을 드시라고 권하자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2절).

제자들로서는 매우 뜻밖의 말씀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알쏭달쏭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누가 먹을 것을 갖다 드린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걸 눈치 채고 보다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니라.”(34절).

 

여러분, 양식이 무엇입니까?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양식입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에너지의 근원이 양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자기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어드림으로써 자기는 살아갈 힘을 얻고 있으며 그 힘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일은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해서는 살아갈 힘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만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죽은 자 되살리기]입니다. 구원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행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은 자들인데, 그 죽은 자들을 되살려내어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살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자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어내는 바로 이 일이 예수님에게는 살아가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곱씹어봅시다. 죽은 사람을 생명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예수님의 양식이라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만 한 게 아니고 그 일이 곧 예수님 자신을 살리는 양식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버지의 뜻이기도 하지만, 그 일이 예수님 자신을 살리는 양식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는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어딘가가 허전하고 삶의 생기가 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양식인데 이 양식은 안 먹지요 살기는 해야겠지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다들 죽지 못해 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살고, 욕망에 붙잡혀 살고, 경쟁의식에 불붙어 살고, 자기 멋대로 살고 난리법석이지 않습니까.

반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신묘하게도 살아갈 힘이 솟구칩니다. 살아갈 이유가 보이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달프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긍정의 힘이 나오고 삶의 생기가 돕니다.

 

사마리아 여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뜻이라는 양식을 먹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살았으나 죽어 있었습니다.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해봤지만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어 고독했습니다. 삶의 생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양식을 먹자 힘이 났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와 보라. 내 과거를 다 알아맞힌 분이 여기 계시니 와 보라’ 양식을 먹지 못해 죽어가던 그녀가 양식을 먹더니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운동에 나섰습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다리에 힘이 돋고, 텅 빈 영혼에 비전과 열정이 생겼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지고 닫혔던 혀가 풀렸습니다. 달려갈 푯대가 생겼습니다.

그녀는 본래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살았고 다른 생명을 소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살아났습니다. 참된 양식을 먹음으로써 살아났습니다. 그녀는 살아나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나섰습니다. 다른 생명을 죽이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섰습니다.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 이것이 그녀의 새로운 양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근원적인 삶의 혁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참된 구원입니다. 다른 생명을 죽이고 소비하는 것에서 다른 생명을 돕고 살리는 것으로의 전환이 가장 근원적인 삶의 혁명이고 가장 근원적인 구원입니다. 저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참된 양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삶의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세상을 살리는 일이 나의 일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군중이 아니라 역사의 주역이라는 것,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제 안에 세상에 대한 주인의식,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사람에 대한 리더의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본래 만화책도 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교과서 외에는 읽은 책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책을 읽을 필요가 생겼습니다. 아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역사에 책임 있는 리더로 살려면 알아야겠구나, 알려면 책을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38년 동안 책을 놓아 본 적이 없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서도, 좌우지간 틈만 생기면 책을 읽었습니다. 심지어 간 이식 수술을 하고 3일째 되는 날부터 중환자실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 제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한 저는 책을 읽을 것입니다. 제 안에 예수님이 죽는다면 나도 책을 덮게 되겠지만 제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신 한 책을 읽게 될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나는 역사의 주역이 돼야 하고, 리더로 살아야 하니까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영광스런 책임이니까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물론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밥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한 평생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고서는 내면과 인격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리더로 살기 어렵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것 말고, 참된 리더로 산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 나왔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그 마음속에 아직 리더로서의 자의식, 세상에 대한 주인의식,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기 때문이고,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에 눈뜨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로서의 자의식, 세상에 대한 주인의식,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으면 읽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읽게 되어 있습니다.

시인 고은씨가 책에 대해 이런 찬사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책은 미치고 환장할 매혹적이고 요염한 여인이고 남성이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탄복했습니다. 책의 정체를 가장 섹시하게 표현했다고 생각됐습니다. 정말입니다. 책은 미치고 환장하게 지루한 것이 아니고 미치고 환장하게 매혹적이고 요염한 것입니다.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면 책이 천만 배 은총을 준다.” 예, 사람이 책에게 10을 주면 책은 그 사람에게 1억을 줍니다. 사람에게 천만 배 은총을 돌려주는 것은 책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 안에서 부름 받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향하여 부름 받았습니다. 그냥 재미로, 도매금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것 아닙니다. 할 일이 있고 뜻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군중이 아니라 리더로 살라고, 끌려가는 사람이 이끄는 사람으로 살라고,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리더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일류 대학이나 취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리더로 살기 위해 손에서 책을 놓지 말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리더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리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 십년 이십년 공부하고 훈련받아야 리더로 설 수 있고, 리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한 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이 준비를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준비된 만큼 쓰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손해 보지 않으십니다. 준비된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반드시 쓰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열심히 준비하십시오. 내일을 염려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십시오.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다른 사람을 살림으로써 내가 사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 사람을 섬기는 일을 양식 삼는 사람이고, 이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차원의 리더로, 세상의 주인으로, 역사의 주역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세상의 주인, 역사의 주역, 사람을 살리는 리더는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공부하는 자만이 리더이고, 리더만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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