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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4주년 감사예배 설교

2015.03.08 16:48

정병선 조회 수:812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창립4주년 감사예배  
성경본문 빌립보서2:5-12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50308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50308_SabbathPreaching.mp3
영상다운 https://www.youtube.com/watch?v=iNypn6sATCM

 

    (MP3 듣기: 2015년 3월08일 주일예배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Nypn6sATCM

 

말씀샘교회가 이 땅에 첫 출항을 한지 어언 4년이 지났습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두 번째 교회 개척에 나서면서 큰 꿈이나 거창한 비전을 품고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두 가지 마음에 이끌려 개척했습니다.

 

첫째로는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겠다는 마음, 주님의 고난을 내 몸에 채우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렸습니다. 제가 고난을 사모하거나 칭송하는 금욕의 영성가라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제 설교를 들으신 분은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이 세상을 긍정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 누리자는 향유의 영성가이지 금욕의 영성가는 아닙니다. 그런데 향유의 영성과는 별개로 주님 때문에 고난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난 받는 것이 영광이라는 생각, 지금 고난을 자처하지 않으면 죽은 후에 주님을 뵐 면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교회 개척만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이도 나이이거니와 지금 이 시대는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 개척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이 영광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달라지더군요. 남들은 사업을 하다가 망하기도 하는데 주님을 위해 망하는 것이야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로는 내 설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 설교하자는 마음에 이끌렸습니다. 저는 투병하는 6년 6개월 동안 설교하는 자가 아니라 설교를 듣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때 여러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거듭거듭 확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땅에 설교는 넘치는데 정말 들을 만한 설교는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 시중에 몸을 해치는 유해음식이 많은 것처럼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해치는 유해설교가 한국교회 강단에 많다는 것, 적잖은 성도들이 먹을 말씀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거듭 확인했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마음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분노가 끌어 올랐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마음의 결기가 생겼습니다. 내 설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 설교하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는 마음의 결기가 생겼습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이 들어오니까 두려움이 없어지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 바라보고 무작정, 정말 무작정 개척에 돌입했습니다. 이렇게 개척에 돌입하고부터는 기도하면서 두 번째 목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설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코 눈 감으면 안 되는 복음의 걸림돌들은 무엇인가, 어떤 교회를 세울 것인가 등등을 묵상했습니다. 하나하나 묵상을 하면서 [말씀 · 기도 · 자유 · 순명]이라는 말씀샘교회의 목표어를 찾았고, 말씀샘교회의 정체성, 말씀샘교회의 목회 원칙, 말씀샘교회의 신앙 지표로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4년 전 3월 둘째 주일에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개척 동지 한 사람 없이 정말 내일을 알 수 없는 가운데 말씀샘교회가 출항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교회 설립을 하자말자 제 설교를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보내주셨습니다. 생각지 않은 도움의 손길도 보내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4년이라는 시간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4년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마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말씀샘교회도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섰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씀샘교회도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물론 정반대도 진실입니다. 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여기 있는 것이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제가 있는 것 아니고, 저 때문에 여러분이 있는 것 아니에요. 오직 주님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말씀샘교회가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의 섭리’라 합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말씀샘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속에서 지난 4년을 걸어왔습니다. 결코 빠르지도 않고 결코 느리지도 않게 한 걸음씩 걸어왔습니다. 힘든 시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든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성한 은혜와 기쁨과 축복 속에서 한 걸음씩 걸어왔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4주년을 맞는 오늘 저는 감사와 더불어 책임감을 느낍니다. 말씀샘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을 살아야 한다는 영광스럽고도 행복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저는 이 말씀이 4주년을 맞는 말씀샘교회가 붙잡고 씨름해야 할 책무요 푯대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생각해봅시다. 교회가 할 일이 뭘까요? 아무리 이것저것 따져 봐도 교회가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을 사는 것. 구원은 하나님이 교회에 베풀어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구원은 교회가 경험하고 살아내야 하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최고의 비밀도 구원이고, 절망과 어둠에 갇힌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또한 구원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할 일이 뭐겠습니까? 구원을 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사는 일에 집중하면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책무요 푯대입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어야 할 것도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의 구원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할 것도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의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뭘까요? 사람들은 대체로 구원을 종교적이고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이고 내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구원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실재입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을 신비하고 영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것, 도둑질 하지 않는 것,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더러운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는 것,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 것,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는 것, 서로에게 친절한 것,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것이 바로 구원을 사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엡4:25-32).

옳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구원은 뭐 거창하고 영적이고 내세적인 무엇이 아니라 지극히 소소한 일상에 깃들어 있는 삶의 실재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죽임살이에서 건짐 받는 차원이 있고, 둘째로는 죽임살이에서 해방되어 살림살이를 하는 차원이 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본래 죽임살이를 했던 자들입니다. 죽임살이라고 하니까 뭐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걸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불평하고, 의심하고, 속이고, 지배하고, 경쟁하고, 주장하고, 차별하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고집부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돌아서고, 무책임하고, 무정하게 사는 것이 죽임살이입니다. 구원은 바로 이런 죽임살이에서 건짐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구원은 살림살이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살림살이라고 하니까 뭐 거창하고 찬란하고 숭고한 걸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감사하고, 신뢰하고, 격려하고, 배려하고, 환대하고,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고, 화평하고, 겸손하고, 나누고, 예배하고, 순명하고, 순명함으로써 자유하는 것이 살림살이입니다. 구원은 바로 이런 살림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주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고, 주님께 받은 생명을 사는 것이고,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생명을 받고, 생명을 살고, 생명을 살리고, 이것이 구원입니다.

교회는 이 구원을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교회는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는 사교 모임도 아니고, 서로의 이익을 공유하는 이익단체도 아니고, 영적 욕망을 채우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 종교집단도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이 주신 구원을 살고, 주님의 구원을 담아내고, 주님의 구원을 세상에 퍼주라고 부름 받은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창립4주년을 맞는 말씀샘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을 살고, 주님의 구원을 담아내고, 주님의 구원을 세상에 퍼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 안에는 죽임살이의 습성과 관행이 많기도 하고 또 강하기도 하기 때문에 살림살이를 한다, 구원을 산다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국교회 안에는 불신과 냉소가 팽배하고 성공 경쟁이 치열합니다. 독선과 아집이 강합니다. 돈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목회자와 성도간의 불신, 교회를 향한 냉소, 더 큰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경쟁, 나만 성경적이라는 독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아집,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돈, 이 여섯 가지가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고 훼파하는 가장 무서운 독이고, 교회를 죽임살이로 몰아가는 가장 나쁜 에너지인데, 이 독과 나쁜 에너지가 한국교회 안에 먼지처럼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샘교회가 주님의 구원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이 여섯 가지 독과 나쁜 에너지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지겹도록 많이 그리고 치열하게 죽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죽임살이에 골몰하고 있고 죽임살이에 지쳐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성도들은 무슨 힘이 남아 있는지 교회 안에서까지도 죽임살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죽임살이를 하는 것처럼 슬프고 원통한 일은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 교회에서 죽임살이를 하는 것보다 더 웃기는 코미디는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일이고,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주님의 복음에도 가장 어긋나는 일입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이 온통 죽임살이를 한다 해도 교회만큼은 죽임살이를 하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만큼은 서로 불신하고, 냉소하고, 경쟁하고, 독선을 자행하고, 아집을 부리고, 돈으로 힘을 행사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샘교회는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고 훼파하는 여섯 가지 독과 나쁜 에너지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여섯 가지 독과 나쁜 에너지로부터 해방되어야 고질적인 죽임살이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죽임살이가 아닌 살림살이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직 이것만을 원합니다. 말씀샘교회가 살림살이를 하는 것, 저와 여러분이 함께 구원을 사는 것, 오직 이것만을 원합니다. 저는 말씀샘교회가 다른 일에는 좀 부족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당 건물이 없어도 괜찮고, 성도 수가 적어도 괜찮고, 내놓을 만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괜찮고, 재정이 부족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림살이를 하는 일, 구원을 사는 일에서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살림살이하는 것, 구원을 사는 것 배우고 싶습니다. 머리로 구원을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구원을 사는 일에 모든 역량과 마음을 쏟고 싶습니다. 말씀샘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상, 즉 예배하고 · 밥 먹고 · 청소하고 · 공부하고 · 기도하고 · 모이고 ·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크고 작은 일상을 통해 구원을 살고 싶습니다.

 

구원을 사는 일은 무지 어렵지만 쉽고, 무지 쉽지만 어렵습니다. 말장난을 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가 살림살이를 하는 길, 구원을 사는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감사와 신뢰의 끈을 굳게 붙잡으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감사와 좀 더 깊은 신뢰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신뢰, 이 둘을 굳게 붙잡으면 죽임살이 에너지는 약화되고 살림살이 에너지는 충전되기 때문에 결국 살림살이를 하게 됩니다.

감사와 신뢰가 충만한 교회는 사단이 절대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세상이 절대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교회는 주님과 깊이 결속되어 있고,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교회는 온 성도가 한 몸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사단이 무너뜨리지 못하고 세상이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감사와 신뢰가 충만한 교회는 따스함이 묻어나고, 평안이 묻어나고, 기쁨이 묻어나고, 행복이 묻어납니다. 온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쉼을 얻고, 생기를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저는 말씀샘교회가 이런 교회로 서가기를 희망하고 꿈꿉니다. 감사와 신뢰가 충만한 교회, 따스함이 묻어나고, 평안이 묻어나고, 기쁨이 묻어나고, 행복이 묻어나는 교회, 온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 쉼을 얻고, 생기를 얻고, 용기를 얻는 교회로 서가기를 희망하고 꿈꿉니다. 다른 건 부족할지라도 주님의 구원만큼은 풍성한 교회이기를 희망하고 꿈꿉니다.

구원은 삶입니다.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사는 삶이고, 하나님나라의 축복을 향유하는 삶입니다. 구원은 매우 소박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고,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삶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구원을 살고 싶습니다. 주님 안에서 보다 아름다운 삶, 보다 행복한 삶, 보다 의로운 삶을 일구어가고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향유해야 할 영광입니다.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