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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 하신다 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내용으로    대다수의 기독현대인들은 구원이 끝은 마치 천국행 티켓 으로 전략되고    구원의 이해가 초보적이고 뒤틀린다 라는 현실세계에서 스캇 맥 라이트 는“내가 자라면서 복음 이라고 배운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 의 보편적으로 이해한 구원론을 바탕으로 결국 구원의 원형을 찾을수 없을 만큼 심히 왜곡되고 뒤틀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구원을 복원하여야 만 한다는 대명제가 생기고 “죽음에서 왕노릇” 하는 시스템에서 “생명의 왕노릇” 하는 시스템으로의 우주적인 전환이자 귀환 인것이고 정체 불명의 비성경적인 구원론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구원론의 회복없이는 그리스도의 삶의 회복도 교회의 회복도 없으며 구원이 무엇인지를 이해 하려면 창조를 봐야한다는 “대 전제의 맥”을 다시 한번 인지하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구원이란 아담의 타락으로 망가짐 (아담안에 거함으로 세상안에 거함) 와해된 하나님의 집의 회복과 완성 이며 특히 이원의 세계회복 하나님의 사람안에 거함 동일한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의 변화 다른 세상으로의 떠나는 것이 아님을 중요시하고 있다


“구원은 창조의 회복이자 완성이요( 새창조 )  창조는 구원의 원형이자 토대” 라는 매우 중요한 인식을 하는 것이다
결국 구원이란 죽음의 체제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 죽음의 체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며 창조의 피날레요 오메가 포인트인 하나님 안식에 참여 하는 것 으로 창조의 목적 완성을 이야기 한다

에덴 추방 이후의 세계현실은 죽음의체계의 떨러진 상황에 살고 있으며 죽음의 체제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더

긴급하고 근원적인 일은 없다.   이것이 바로 구원 이라고 설명 하고 있다.


하나님의 세계창조는 하나님의 나라(집) 창조 작업 다시말해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진 이원의 세계창조 / 하나님과 소통하는 인간 (하나님의 대리 통치)창조를 설명 하고 있다   창조의절정은 성경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의 안식으로 끝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창조는 단순한 제조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건설 프로젝트를 보여주며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형 이라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안식이란. 쉼 정적인 평안이 아님을 마스터 플랜의 성취이고 창조자의 왕의 즉위식 이며       하*나 의 현실 하*나 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최상의 표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창조는 안식을 향한 창조 인 동시에 안식을 위한 창조 로써 창조는    에덴 동산 하나님 나라 안식 /     타락은 에덴동산의 추방 (실낙원)

                                                                                                                     안식이 깨짐 /을


구원은  에덴 동산의 회복 ( 복락원 하나님 나라의 완성 ) 즉  안식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잘 굴러가는 기계 (시계 자동차) 아님 완제품 이 아니라는 것 시스템 안에서 잘 움직이는 결코 닫힌 세계 가 아니라는 것 /닫힌 세계는 하나님의 존재와 어울리지가 않는다는것 / 최종적인 완성을 향해 무한히 열려있고 변화 되는 세계창조 /자가 시스템 안에 닫힌 세계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으며 사람의 출생과 엇비슷함 이 있다


마크 헤리스는 하나님의 창조를 “무로부터 의 창조”와 함께 “계속적 창조 ” 라고 설명 하고 있으며 계속적 창조 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단지 첫 세계의 창조에 제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창발하는 행위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선악과 이후의 세계운명은  끝없이 희망을 노래하고 지식을 쌓고 기술을 개발하고 경제를 발전 시키고 종교적인 구도의 길을 찾고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시도 하여도 “죽음의 체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꿈은 문명만큼이나 오래되었으나 한번도 실현 되지 못하였다.극복 되어서도 안된다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계약이 휴지조각 이 되어버리고 계약에 충실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휴지조각이 되어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된다 .                            구원이란 ?/ 죽음에 체계에서 해방되는 것  

  죽음의 쳬계에서 해방되는 것 보다 더 긴급하고 근원적인 일은 없으며 결국 "이것이 구원이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존재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라는 점 계약의 깨어짐에서 비롯된 관계이며 하나님의 거스리는 삶의 체계이자 양태 인 것 명사가 아닌 동사 라는 사실                                                       

  죽음 이아닌 죽음살이 라는 것. 죽음의 체제로부터의 해방은 깨어진 관계 회복이라는 것 예수는 여자의후손 “마지막 아담” 하나님의 본체 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시며 마지막 아담은 아담과 예수그리스도의 대조 “오실자의 모형” 인 것 이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각각 두시대의 머리이며

 

아담은 옛시대 곧 사망의 시대의 머리 이며         그리스도는 새시대 곧 생명의 시대의 머리인 것이다 /예수님은 첫 사람 아담안에 있는 죽음 (모든 재앙과 저주)를 죽음 으로써 성취 하였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서 허겁지겁 처방전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이미 인류의 두 대표로써 아담과 예수를 정하시고 두 대표의 계약을 통하여 창조의세계를 다스리시고 구원하실 것을 작정 하셨다는 사실 /

이것은 바울이 다 이해 하지 못하는 신비 인 동시에 그러나 예수가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한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바울은 아담과 예수의 일대일 대응 이라는 “서사구조”를 통해 구원을 이해하였으며 그 결과 복음을 개인의 의로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하나의 의” (롬1:17)아담 안에 있느냐/ 예수 안에 있느냐에 따라 불의의 의가 판명되고 죽음과 생명이 뒤따른다고 말했으며(롬5:17-19)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독특함 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하나님은 온세상을 구원하신 절대 주권자 이심에도 전능의 칼을 마구 휘둘르지 아니 하시며 하나님 께서는 언제나 대표성의 원리와 계약의 원리에 기초해 일하신다
석가 노자 장자 공자 마호메드 — 매우 매우 탁월한 인류의 스승 그러나 결국 in adam 아담 안 에 있다는 사실. / 하나님의 일하심이 대표성의 원리와 계약의 원리에 기초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편협함이나 독선은 더더욱 아니다 .


그러므로 구원은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품 에 딸린 것이 아니라 관계의 딸림 이라고 말할수 있으며 “업적의 문제”가 아니고 “은혜의문제”“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문제” 라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하나님 계약안에 있는 생명 창조를 통해 받은 “자연적 생명”이 아니라 계약의 유효성 안에서만 가능한 “계약적 생명”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유연대 속에서 향유하는 생명 /

좀 현실적으로 말하면 Eternal Life 가 아닌 True Life.바울의 언어로 표현 하면 “육체에 따라 태어난 생명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태어난 생명 ”왜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었는가 ?십자가의 죽음 만이 유일무이 한 대속의 길이기 때문 이요 / 죽는 것만이 참된 구원의 방식이기 때문이요 / 십자가에 죽는 것만이 아버지 께로 돌아가 성령을 보낼수 있기 때문 이라


최고의 구속신학자 바울 선생은 구원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다 포획되지 않는 깊고도 오묘한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이 자가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 으로 생각지도 못 하였다고 한다 (고전 2:9 )

 실로 그러하다 아담 안에서 죽은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는 이 구원의 길은 실로 우리가 도달할수 없는 하나님의 작정이요 지혜인 것이다 (고전 15:22 )


바울은 아담과 예수의 대응 이라는 서사 구조를 통해 구원의복음을 의로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롬 1:17) 라고 확정 하였으며 “아담 안에 있느냐” “예수 안에 있느냐” 에 따라 불의와 의가 판명되고 죽음 과 생명이 뒤따른다고 말하고(롬5:17~~19) 이거야 말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 의 아주 독특한 구조 라는 점이다

 

죽음의 본질은 세계의 참 모습 이며 참 기능의 회복이요 세계의 치유와 완성 이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 이란 생명과 세계의 현실이 관계적이니 죽음의 현실도 관계적이라는 것 관계의 단절 과 관계의 그물망이 찟어지고 뒤틀린다는 것 (미움 질투 불신 거짓 배신 거절 비방 자랑) 죽음살이의 표본,이며   결국

 

구원 은 단절된 관계의 회복 /찟어지고 뒤틀린 관계속에 그물망 즉 세계의 참 모습인 관계의 그물망을 복원 하는 것  예수가 행하신 병자의 치유와 이적 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없는 자들을 나아갈수 있도록 하기위해 즉

하나님과의 관계성 회복 깨어진 사회 관계를 복원 하고 몸을 회복하여 온전 하고 자유로운 몸으로 살게 하려고 즉 자신과의 관계 회복으로 설명 할수 있다. 이것은 구원 의 본질인 동시에 핵심이다. (롬 5:1,5:10)  

 

예수의 치유를 표적이라 하는 것도 예수임의 치유가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구원의 행위 였다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죗값치룸 / 깨끗게 하심 이것이 구원의 핵심 이요 더 나아가서 구원론의 왜곡 (법정적 거래) 으로 까지 보여진다.깨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원수된 관계에서 돌이켜 화해를 이루어 내는 것 만유와의 화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으로 바로 이구원을 성취 하게 된다.

 

참된 화해의 길은 용서 뿐이 없는 것이다 참된 관계는 많은 거래 정의로운 거래를 통해서 는 참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참된관계는 오직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ex) 부부 관계 친구 관계 사제 관계 신인관계 죗값치룬 것만으로 참된 화해는 이루기가 부족 하기에 거래를 넘어 그때 용서 가 필요한 것.

 

용서란 은전을 베푸는 것 (시혜)가 아님을 용서란 지움 멀리옮김 기억나지 않음 던짐 하나님의 용서 내려감 (빌 2:6-8) 과 끌어올림(엡 2:5-6) 의  환대의 용서 (눅15:22-24)마구잡이 용서 묻지마 용서 값싼 용서 비루한 용서 가 아님을  말해준다

 

정의로운 용서 값비싼 용서 희생의 용서 환대의 용서 완전한 용서 무상의 용서 (너무  값지기에 무상임) 가 있다.용서는 관대한 사랑의 마지막 행위라는 것.
믿음이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드리는 것이다 용서 받은 자로써 화해를 기뻐 하고 즐거워 하며 화해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용서 하나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아 가는 것이 믿음 이다.

 

내가 행하고 성취하고 내가 아는 것 내가 쌓은 것은 실로 아무것도 아님을 비루하고 쪽 팔린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드리고 하나님의 용서에 기초해 화해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믿음 이요  구원의 길인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에 기초해 으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용서해 기초해 하나님 의 보좌에 나아갈 담대함을 얻으며 하나님의 용서에 기초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와 화해하는 것이 실로 구원 이다 도덕적 삶이 아닌 화해의 삶이 구원이다.

 

용서 외의 다른 것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용서를 부정 하는 것이고 하나님 과 거래 하자 라고 덤비는 것은 그것은 믿음 이 아니고 종교이다 크리스챤 중에서도 참 믿음의 뿌리가 있는 사람에 반하여 종교 행위 만을 하는 사람 이 있다.

 

 “하나님의 용서를 부끄러워 하는 것은 교만 중에 교만” 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허영    중에 허영”이니라.    

살이 돋는 멋있는 표현 이다.

어찌 부모의 은혜를 더 나아가 감히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수가 있는 것인지 감격의 은혜가 죽음에서 참 생명으로 전환 되는 희열의 극치를 맛보는 순간 이였다.


구원의 본질은 화해이며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화해와 용서의 죽음 으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화해와 용서의죽음 이며 이것이 나아가서 이성적 각성 기쁨의 평안 기적 해방과 자유 까지 가야만 해야 되는 것이다

구원이 실제는 해벙 사건으로 나타난다 죄로 부터의 해방으로 어둠/ 죽음 으로 부터의 해방 / 욕망으로 부터의 해방 과 열린 세계의 가치관으로의 해방 으로 나타나는 것 이다 .


구원은 ~~로 부터의 해방 하는 것을 넘어 자유의 삶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게 하는 것  (출 3:12 )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것(출 19:6 ) 이다.
진리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자유 할수 있으며 자유하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님을 명시한다 진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자유 또한 자유가 아니다 오직 자유하게 되는 것만이 진리 이며 진리로 나아갈수 있는 것만 이 자유 인 것이다.
자유 에는 순종의 길 과 불순종의 길 두길이 있다 진리 순종의 길과 불의 불순종의 길이 있다.


율법이 없는 자유는 자유 가 없다 /사람들은 율법을 자유 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자유는 세상에 존제 하지 않으며 율법 없는 자유 만이 참 자유이다 / 자유는 기본적으로 율법을 요구 한다. 이것이 자유의 역설 적인 표현 이다.


그리스도 인들은 근원적 자유앞에 선 자유인 위대한 자유를 선물 받은 자유인 이요 동시에 자유로써 자기감정을 따라가고 자기욕망 세상의소리 육신의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할 가능성이 농후한 죄인 이다

루터는 “걸레 같은 의인” 이다 라고 표현을 했다 귀가 막힌 표현 이다.


자유인 이되기 전에는 죄의 종으로 살면 되지만 자유인이 된 후로는 자유로써의 진리의 길을 가도록 부름을 받지만 그러나 죄의 본성 에서의 완전한 허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삶은 자유로써의 진리를 가는 것이다 . 그 자유의 영역 이라는 것인 점점 커지며 깊어진다./자유는 강한자의 것이 아니며/ 자유는 진리에 매인자의 것 / 자기의 약함을 아는 자의 것 이다/ 주님 앞에서 날마다 죽는 자의 것이다 /


자유로써 육체의 기회를 삼는 자 방종하는 자는 자유의 혁명은 있으되 자유의 능력은 없는 자이며 하나님 께 순명하는 자/ 진리에 메인자 / 자기 안에 자유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자 / 사랑안에서 서로 종노릇 하는 자(갈 3:15) 가 참 자유인 인 것이다
상식과 세상의 편견을 뒤엎는 역설 이다


구원은 예수님과 같은 인간이 되어가는 동사적 과정 이다    하나님 외의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사랑안에서 서로 종노릇 하는 주체로 살기위해 자아와 싸우는 동사적인 과정 이

  곧 구원 이다.자아 욕망 자본 경쟁 국가 지식 편견 지난 상처와 아픔 확신 어둠 과 죽음 의권세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해방의 사건과 자유의 삶을 구원 하는 것이다  

.예수는 진정한 자유인 이다.예수의 몸 과 삶 말이 온통 진리에 매여있다 아버지 하나님 외에 그 무엇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예수는 진정한 참된 자유인 인 사실이다 우리도 예수의 삶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과 같이 인간이 되어가는 “동사적 과정” 이다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사랑안에서 서로 종노릇 하는 주체로 살기 위해 자아와 싸우는 “동사적인 과정”이 곧 구원 이라는 것이다 자아 욕망 자본 경쟁 국가 언론 지식 편견 지배욕망 노예근성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 자기 확신 시대의유행 어둠 과 권세 세상의 가치관으로 부터의 해방의 사건과 동시에 자유의 삶이 구원 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밖에서 객관적죽음 즉 예수의 십자가 죽음 으로 성취 됐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 하신다 여기서 “만민 구원 론” 이 나오는 데 “만민 구원 론”이란 얼핏 봐서는 합리적인 것같고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주장 같아 보이나 만민 구원론은 인간을 객체로 추락 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래로 추락시키고 마는 신학적 “매음 행위” 라는 것 결국 존재의 삶에 근원적인 변화 를 가져다 주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객관적인 구원 사건을 개개인 의 예수와 함께 죽는 일 “자기죽음 의 사건”을 통과 해야만 한다는 것 이다“이신 칭의” 라는 것은 결국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칭찬 받는 것” 이라고 할수 있겠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즉 이신칭의 라는 것은 구원의 핵심은 “의”요 구원 이라고 하는것은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라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아직 온전한 실제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신칭의는 교회를 서게도 하고 넘어지게도 하는 “기독교 복음 의 핵심 교리” 이자 “기독교 구원의 놀라운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다른 종교와의 차이도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신칭의”에서 말하는 “의”란 무엇일까?아브라함의 경우 칭의에 첫 장면 에서는 /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 로 여기시고 언약을 맺음 도덕적인 의 가 아나라 언약적 의 라는 것에 확증을 두고 있다.

.“전가”란  “선포” 란   전가 –칼뱅 은 칭의는 죄를 용서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는 것 “주께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지 않고는 자신의 은혜가운데 받아드리거나 자신과 결합 시킬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후크마 –칭의는 하나님이 믿는 죄인들은 그들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바탕으로 의롭다고 선언 하시고 그들이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시고 그들에게 영생을 얻을 권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법정적 행위를 말하는 것 이다.

선포는 칭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 했기 때문이 아님을 의로우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임을/ 톰 라이트에 “의롭게 하다” 라는 말 은 어떤 사람을 변화 시키는 행위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상태를 부여하는 선언을 가르킨다.

 

예)나와 옷의 예를 들자면 옷은 필수품 인동시에 그러나 그옷이 곧 나는 아니라는 것 나와 옷은 언제라도 어느 때라도 분리가 가능한 것이라는 곳 옷은 내 모습을 아름 답게 할 수는 있으나 나와 내존재의 삶을 새롭게 형성 하지는 못한다 옷은 그저 옷 일뿐 나와 동떨어져 있는 사물 객체일 뿐이다.

 

 그러나 나와 구원의 관계에서는 “나와 옷은 관계가 다르고 구원 은 옷과 같이 동떨어진 사물이나 객체 일수가 없다는 것”매우 매우 구원의 이해 의 측면에서 중요 하다 구원은 옷처럼 걸칠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님을 “하나님 방식으로 사는 행위. 그자체”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향유하는 존재 삶 (행위) 그 자체 임을 이번 강좌에서 계속 강조 하신다.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구원이 인간의 의지나 행위의 차원에 속한게 아나라 하나님의 배타적 행위라는 뜻./

사람의 노력이나 행위로 생명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생명의 사태가 인간의 손에 달려있지 않은 것처럼 구원 또한 인간이 다룰수 있는 사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시대의 교회들은 이와같은 본래의 의미는 팽개치고 “행위는 필요 없다” 라고 한다/ 잘못된 상급 교리 에 물든 “행위구원론”은 분쇄 돼야 하고 우리의 도덕적 실패를 방조하고있는 “오직 믿음” 의 교리는 극복돼야 한다.


행위없이 구원 받는다 라는 “반쪽 진실” 만 보았기 때문에 좀더 근원 적으로 는 십자가의 대속에 기초한 “칭의” 만을 보았지 대속을 통한 “화해”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지못하고 “행위 없이 구원 받는 다”라는 반쪽 진실만을 이야기 한 결과 인 것이다   믿음과 행위가 분리된 배경의 결론 은 이러하다 믿음과 행위는 본래의 하나됨을 회복하여야 한다.

“ 행위없이 믿음 으로 구원 받는 다”라는 진리는 반드시 “행위없는 구원은 없다라”는 진리까지 나아가야 “행위 없이 믿음 으로 구원 받는다“ 라는 진리가 비로소 진짜 진리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행위 없는 구원은 없다” 는 진리는 반드시 “행위없는 믿음 으로 구원 받는 다” 라는 진리위에 서야 하며 그래야 진짜 복음 온전한 복음 이 될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어쩔수없이 “믿음 없는 행위” 로 떨어지거나“ 행위 없는 믿음으로 떨어지거나”하게 된다 지금 의 한국 대다수의 교회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믿음은 행위의 어머니이도 행위는 믿음의 자식이다 “믿음 과 행위는 하나다” “믿음은 곧 행위이고 행위는 곧 믿음 이다” “ 행위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믿음은 행위를 동반 한다        ” 믿음과 행위는 둘이 아닌 하나다.


믿음이 옳으니 행위가 옳으니 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그런데 교회는 그동안 믿음 이냐 행위이냐 에 뜨겁게 논쟁하며 싸워었다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명성과 도 같은 것이기에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믿음은 행위를 부정 하고 행위는 믿음을 부정한다. 라고 주장 하면서 믿음을 또는 행위를 선택 하라면서       이제껏 강요해 왔었다

 

. 사실 믿음과 행위는 하나인데 믿음은 행위의 어머니이고. 행위는 믿음의 자식이거늘. 행위는 믿음을 전제하고 믿음은 행위를 동반하여야만 하는데 교회는 이진실을 왜면한채 믿음과 행위를 분리 시키고 만다. => 믿음에서 행위를 아예 제거한다. “행위없는 믿음” “행위 없는 구원을 다량 생산 시키고 유통 시키고 만다”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 는 것은 구원이 “인간의 의지”나 “행위의 차원” 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배타적 행위 라는 뜻.사람의 노력이나 행위로 생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 생명이라는 사태가 인간의 손에 달려있지 않은 것처럼 구원 또한 인간이 다를수 있는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와같이 본래의 의미는 내 팽겨치고 “행위는 필요 없다”라는  행위 무용론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행위없이 구원받는다” 라는  반쪽진실만을 보았기 때문에 “행위 없이 구원 받으나 행위 없는 구원 은 없다” 더 큰 진실을  더 넓고 근원적인 진실을 한국 교회들은 보아야 하거늘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매우 가슴 이 아플뿐 이다 “통곡 하며 바로잡아야할 문제(대제) 이다.
“스캇 맥 나이트”의
“내가 자라면서 복음 이라고 배워왔던 것이 실제로는 주 그리스도를 모욕 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듯이 뒤틀려진 구원을 바로 잡아냈듯이
한국 교계에서는 더 이상의 “ 개독교” 라는  우스꽝스러운 비난과 모욕을 당하지 
않을라면  우리는 회복의 역사가 구원회복의역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참 그리스도 인들은  꾸준히 공부 해야한다.
참 크리스챤들을  공부 해야 마땅하다. 꼭 공부 하여야만 한다.
올바른 자각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주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섬겨야 합니다.

 

올바른 크리스챤의 이성과 올바른 크리스챤들의 믿음 올바른 크리스챤의 합리적인 사고를 
통하여서. 지긋지긋한 종교생활에서 벗어나 지금 부터라도 올바른 신앙의 지성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바로서야 할 것이다. 매우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자신의 믿음의 깊이를 실시간 적으로 첵크하는 동시에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려야 할것이다
하나님과의 일대일 소통만이 아래로 아래로 뿌리내리는 작업만 이 가능한 것이다
어렵지만 시도 하여야 한다  이런것들을  행위의 믿음 이라고 하는 것인데
 행위없는 믿음 양산.  .즉 구원이 뒤틀리는 재앙으로 발생되는 사태 까지 이르게 되었다.

믿음과 행위는 본래 하나됨을 회복해야한다.   그렇다 “행위 없이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진리는 반드시 “행위없는 구원은 없다” 라는 진리로 까지 나아가야 된다 
매우 매우 중요하다 “행위없이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라는 진리가 진짜 진리인 것이다.   

 


“행위없는 구원은 없다”는 진리는 반드시 “행위없이 믿음 으로 구원 받는다”는 진리 위에 
서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야 진짜 복음 온전한 복음 이 될수 있는 것이다, / 믿음과 행위사이에 역동적인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그야말로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참여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어쩔수 없이 “믿음 없는 행위”로
 떨어지거나“행위없는 믿음”으로 떨어지거나 하게 된다.
 대다수의 한국 교회가 그러하듯이 .
교회 안에서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행하고” 할 필요가 있으나  대다수의 교회들 .대다수의
크리스챤 들은 이런 위급사태를 제대로 파악 하지 못하고 다니고 있으며 다구나 교회안에서의 
종교생활 까지는 좋으나 교회밖에서의 사회에 비취는 크리스챤 들은 정말  배움을 더할 필요가 있다. 아니 각성 해야 한다./ 만약 진실한 크리스챤 이라면 믿음 과 행위에 대하여서 각성 해야만 한다. 수없이 많은 대전제속에 부조리들, 잘못된 오류 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실로 그러하다. 조급한 현실임을  위급한 상황임을  올바른 지각과 올바른 이성으로 
판단하여야만 한다.
지성인 으로써  크리스챤 으로써  우리는 참되고 참된 유산 실지 교회 건물 이나 재산 이
 아니라 구원의 참 본질은 무엇이며 구원의 실제 내용 그 구원의 참 현실을 우리는 후세에 
변질되지 않는 오염 되지 않는 근원적인 구원의 진실을 물려줄 필요가 있다 .
시급 하다. 이것이야말로 열린 창조에 부합하는 주님 이 바라시는 현시대의 실상 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각 하고 공부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교회 안에서 종교생활 로부터 
벗어나 참다운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려놓으며  아래로 자랄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것이다.“
 하나님 전 에서는 이일이 가능 하다”하나님 앞에서 끊임없는 자기  발전을 통하여서 아래로 자랄수 있는 진실한 크리스챤을 기대해 본다.
. 아래로 아래로 깊이 깊이 성장 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받고  믿음은 행함을 낳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
그리스도의 현실은 –믿음과 행위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마련이다  안생길수가 없는 것이다. 
(마:5:48. 마5-6장 시편 15편)
행위중심의 해결에서 보면 행위가 왔다갔다  하는것이요   믿음 중심의 해결 방식으로써는 
행위는 배제되고 믿음만 주장   이두가지 방식으로는 바울과 야고보를  결코 통합하지 못한다. 
구원의 복잡성에 대해서 알아보자  입체적 이며 역설적인  세가지 측면과 두가지 양태를 입체적으로  중첩 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과거족인 측면 (엡2:8) 현재적인 측면 (빌2:12) 종말론적인 측면 (살전5:23) 이 중첩되고  또 양태적으로는 수동태 (과거)와 능동태 (현재)가 중첩이 되고 있는 것들을 볼수가 있다.

 

 즉 다시말해  칭의 속에 성화 와 영화가 들어있고 성화 속에 칭의와 영화가 들어 있으며 구원은 사건적이면서도 과정적 (단회적이면서도 반복적) 단회적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사건으로 구원이성취되었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성취된 구원은

지금도 
종말론적 완성을 위하여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으며 “공사중” 이라는 것
구원은 이미 성취되었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종말론적 긴장 즉 “Already not yet”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구속의 복잡성에 대해 살펴보자 구속사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지못하면 네가지 오류를 
범하게 된다 /믿음과 행위사이의 간격을 없애려다가 믿음과. 행위사이의 틈. 사이로 
추락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며/ 역시 “나는 안돼” 라는 자신을 정죄하고 절망에 빠지는 오류가 
생기게 되며 외식 즉 불순종 하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꾸미는 외식과 위선의 오류 즉 
~~하는 척  / 행위는 아예 팽겨치고 믿음에만 코를 밖는 경우가 생긴다 .
결론은 이러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구속사적인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의 구속사적현실( 제 아무리 믿음이 좋고 구원을 받아도 
구원을 옹골차게 살아내지 못하는 현실  즉  어린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세계를 살지 못함)을 꿋꿋하게 살아낼수 있다  이것은 끝까지 믿음으로만 인내가 가는 한 것이다

  행위의 중요성 에 대하여 살펴보자. 


행위란 1차원적인 행위 그자체 즉 예배 봉사 기도 헌금 이웃사랑 사랑 용서 ? 우상숭배 살인 
도덕질 간음 탐심이 없는 것? NO (아니다)  인간의모든 행위는 마음의 열매요 인격의 열매요
성장의 열매(막7:20~ 23).
행위 자체가 곧 삶이 되는 것  그리고나서  참된 행위로 구성되는 삶이 바로 구원 이요 
그렇기 때문에 행위가 매우매우 중요하다라는 것  “인격 전체, 삶전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행위만을 강조할 때 빚어지는 문제로써는 행위 때문에 헹위를 하고  행위를 위해 행위에 
매달리는 삶의 왜곡과 뒤틀림 (행위로 인해 삶이 소외되고 구원이 율법화 되는 왜곡과 뒤틀림이 발생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유래를 살펴보자. 

금요일 해지기18분 전부터 토요일 해지고 한시간 후까지 안식일에는 바느질과 농작물 거두는 일 빵을 굽는 일 실 잣는 일등  건물을 짓고 부수는 일 망치질이나 물건을 옮기는 일등 
39자지 일을 해서는 안된다.  안식일에 걸을수 없는 한계는 성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 1
Km 까지 안식일에는 돈이나 일 같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말해서는 안되며
안식일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니 많큼 슬퍼하거나 울면은 안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행위와 관건에 대해서
정리된 행위 목록 (어떤 행위)냐  정해진 매뉴얼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
(참된 행위) 가 아니다라는 것.
어떤(What) 행위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닌 왜(Why) 행하느냐 “어떻게(How) 행하느내가 
관건이라는 것 이다 .
신앙적 행위와 비 신앙적행위 “믿음으로사느냐” “ 믿음으로 살지않느냐” 가 신앙 성숙도의 
바로미터 로  자리잡게 된다.

 

왜 !  하나님은 각자를 통해서 아래로 성장 할수 있는 힘을 주셨기에  크리스챤 이 하나님 전에서 하나님 앞에서 아래로 아래로 성장 하고 참된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한국 교회가 한국 교계가 아래로 성장 될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 한다 .
 진실로 진실로 이러한 것들을 기도할 때  거기서 구원의 역사하심은 이루어질 것이요 .
이루어질수 있다. 개인 의 종교인으로써  진실한 리얼 크리스챤 으로써 성장 할 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하나님 전에서 성장할 것이다 .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흡족하신 크리스챤 “내아들” “내딸”로써 말이다 내가 기뻐하고    
 춤 추는 물론 좋은 표현 들이다 하 나 
하나님 께서 나를 보시고 기뻐하시고 춤을추신다면  와~~이건 상상 만 해도 너무 너무 입이 안 다물어질 많큼 행복하고 축복될일 일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로서 하나님의  진짜 아들 딸 들이라면  한국 교회에 잘못 된 것들을 
통곡 하며 지금 이순간 바로 잡아야 한다.

. 지금이 바로  바로잡아야 할때이다.
지금 이순간 시행해 옮겨야 할 때이다. 연겹혀 이야기하지만 
하나님 전에서 “아래로 아래로”  깊이 깊이 성장 하라 깊은 사고와함께 깊이 성장하라  

  이것만이 우리들의 과제 인 것이다.

 

그럼 구원 이라는 것  지금 당신은  이미 구원 선상 에 놓일수 있게 될 터이고 참된 구원 의 참맛은 이미 즐기고 있을 터이다  지금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고 익히는 현시점 지금 이순간에서 말이다 정녕 일상 생활에 의 폭과 깊이가 달라짐을 경험할수 있을터이다 .

 
아래로 아래로 내려지는 뿌리의 참된 성숙함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의 선상에 바로계신다 라면  아마 이전의 종교인에서
당신은 격 이 다른 크리스챤 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목회 단상에서  따온글을  소개 하려고 한다.

구원은 외적성취가 아니다 구원은 내적 성장 이다.

구원은 이세상에서 더 좋은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이세상의 속한 삶의 양식에서

해방되는 것 이다 즉 구원은 죽음 살이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다.

 

구원은 사회적인 성공 놀라운 업적 돈의 축적을 통해 자기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죄와 어둠에 갇힌 자기를 인정하고 회심하는 것이다.

구원은 땅에서 올라가는 그무엇이 아니다.

구원은 하늘과 땅의 조화로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와 함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과 함께 성령님을 통해

                                                                  <목회단상 제8-16호 에서 따온글>

 

구원은 세계 내 사건이 아니다 구원은 세계의 사건이고.

온세계가 경험하는 사태인 것 맞지만 그럼에도 구원은 세계 내의 사건이 아니다.

구원은 하늘의 사건이며 아니 하늘의 세계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사건이며

구원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세상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무한 애정과 긍정의 결정체인 동시에.

죄와 어둠으로 찟긴 세상에 대한 분노 썩인 긍휼이자 환대 라고 하셨다.

 

바꾸어 말한다면 구원은 세계 내에서 세계를 위해 일 하시는

하나님의 외롭고도 “자비로운 행위” 라고 했으며

창조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하늘의 사건이듯

구원 역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하늘의 사건 이라 하신다.

그렇다 .맞는 표현이다. 구원은 세계 내 사건이 아니다.

 

구원은 하늘의 사건이며 하늘의 사건으로서 세계에 임하는 것 이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안에서 자라야 한다.

마치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가 자라듯.  꽁꽁 언땅을 뚫고 나온 봄의 새싹이 자라나듯

죄와어둠의 광야인 사람안에 임한 구원도 자라야 한다.

구원은 새로운 생명이니까.

 

우리의 존재삶 전체가 구원에 얽혀져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숨쉬는 것부터 자잘한 일상생활까지 문화적 취향까지

타자에게 네게 건네는 말 한마디로부터 세상사를 해석하는 일까지

다 구원을 받아야하는 것들이니까.

하늘로부터 임한 구원은 우리안에서 자라야 할 것이다./ 쉼없이 자라고, 또 자라야 할 것이다,

다시말하면, 하늘이 우리안으로 우리 삶으로 침투하여 들어와야만 할 것이다,

                                                                                  <목회단상 제 8-15호에서 따온글>

생각보다 많은 크리스도인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눈을 뜨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을 보는“외눈박이”가 된것이며.

자기가 믿고싶은 하나님을 믿는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된것이고.

결과론 적으로는 "진리에서 눈먼자 "들이 된것이라 말할수 있을터.

진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깊은 무지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진리의 눈을 뜨는 은총을 받았음 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빛 안에서 자기의 무지에 깨지지 않는 사람들.

성령에 임재 안에서 있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왜 !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성령의 빛안에서 자기의 무지를 깨우치지 않기 때문이다”

"참된진리의 눈을 떳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자아를 깨우치치 않음"에 결과 라고 보여진다.

 

매우매우 중요한 진실이요  피할수 없는 현실임을 인식하고 제 자리(?) 로 돌아 와야 하겠다.

공부하라,  진리안에서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경험 하며 늘 깨어있는 자세로 섬겨라.

그럼 “구원” 이라는 것 지금 당신은 이미 구원 선상 에 놓일수 있게 될 터이고 참된 구원 의 참맛은 이미 즐기고 있을 터이다, 지금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배우고, 익히는 현시점.

지금 이순간에서 말이다 정녕 일상 생활에 의 폭과 깊이가 달라짐을 경험할수 있을터이다,

 

교회는 " 죽음살이" 에서 해방되어 "생명살이"를 배우고 익히는 공동체 집합.이다

우리는 현 시대에서 살아가는 것은, 살면서 동시에  교회라는 생명살이 공동체속에서

천국 을 맛보아야 할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지는 뿌리의 참된 성숙함과 구원의 "농 익은 완숙미"를 경험할수 있을 이다,

만약 당신이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의 선상에 바로계신다. 라면 아마 이전의  종교인에서

“격”이 다른 크리스챤 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변화 되어 있음에 확신한다.

구원의 이해 가 뒤틀리게 된 배경도 이러하다. 
그리스의 이원론(dualism) - 세계가 근본적으로 두 개의  category 즉  빛과 어둠  하늘과땅
영혼과 육체 선과  악으로 보는 세계관..  즉. 
이데아(형상) ==> 하늘 영혼불변 초월  초감각 보편성 정신 이런 것들을  참된세계 라 보았고
( 신 종교 정신 영혼  사후세계 천사 지혜 영혼한 가치) 
현상계 (질료) =>땅 변화 경험적 현실 감각 개별성 물질 등을 거짓된실제 라고 보았다
과학기술 물질 직업 정치 경제적 활동 육체 지식 노동 등 .

이원론과 성경과 “대립” 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 창조 (창1:1) 
하늘과 땅이 적대적으로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오묘한 .
세계라는 점  인간도 법과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하는 존재로 창조, 육체의 필요도 체워야. 
하지만 영혼의소리도 들어야하는 존재  땅 에 두발을 딛지만 하늘도 바라보아야 하는 복합적인 존재라는 점 
예수와 플라톤은 절대 통합될수 없는 양극의 세계관을 가지며,  그런데도 플라톤은 예수를 
"통합" 시키는 “기막힌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원론의 한계와 현실 은 세계와 인간을 통전적 으로 보지 못하게 가로막으며.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써 분열시키며 하늘과 땅의 영역으로 두동강을  내어버린다..  
마음으로는 하늘의 법  몸의로는 땅의 법을 쫏게 하며  거룩한것과  속된 것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한국 교회)
구원의욕망 – 선악과 이후 인간은  상실과 결핌을 채우기위해 발버둥 치는 욕망 하는 주체가 되었다.
자아는 인간의 성격도 아니고 신체도 아니고 자아는 자기도 아니다. 
자아는 자기의 개별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자기안의 그 무엇이다. 즉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
행하고 욕망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그 무엇이라고 말할수 있다.  자아는 나를 되게 하는 중심이요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준거 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관계의 고리" 
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적인 이해로써 본다면  바울은 날마다 죽는 다라고했으며 (고전15:31) 원하는 바 선은
 행치않고 원치 않은바 악을 행한다 (롬17:19-22-23) 옛 사람을 죽어라 벗어나라고 했음 
(롬:6:6 엡4:22 골3:19) 육체를 죽여라 영혼을 벗으라는 뜻?이 아니라 결국은 자아를 
버리라는 뜻 이다.
결국 바울은 자아를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기를 바라보는 
한사람의닫힌 이해의체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성을 향유하려는 부패한
 "의지의체계" 라고  보았다
종교화 –종교라는 말은 “으뜸가는 宗  가르킬 敎 라는 "불교"에서 어원이 되었으며
영어의 Religion  어원 re-ligio “다시묶는다”“다시띠를 두른다” 는 뜻 의로 
종교는 통산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
삶의 절대적 한계앞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안정을 얻기위한
정신적인 활동이다.
종교의 탁월함과 한계에 대해 살펴보자.
 종교  는 매우 탁월하다 .그러나 한계 가 있다.
 생로병사 生老病死의  苦痛에 시달리는 인간의 限界 와 苦 로 가득한 삶이 반복되는 것
輪回  윤회를 반복하고 거기에서 벗어나 길을 찾음 .
道敎 도교.  
자연의질서 (道) 에 어긋나는 작위(作爲) 즉 (노자의 국가의 통치& 유교의 가르킴) 가
도(道)의 자발적 움직임을 거스리고 차단 한다고 보고 무위(無爲)를 주창
무위(無爲)가 최상의 (道)임을 강조.
유교는 仁은 사람이(人)이 둘(二)임을 형상화 한 것 .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가져야할 바람직한 마음  인(仁)을 이룬 사람이 君子 
仁이 가득한 社會가 대동 (大同) 즉 부처의 세계 極樂 의 세계를 의미한다

基督敎 와 宗敎의 차이를 論理 정연하게 敍述 하였다.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 부활은 욕심을 마음을 정화(淨化) 道德的으로 휼륭한 
사람이 되는 것 정도가 아님 강조하며.
모든 사람이 편안히 살고 약자들이 보살핌을 받으며. 도둑이없어서 대문을 닫을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 이것이 公子가 말하는 대동 사회( 大同事會 )_ 라는 것이다. )
정도 가 아님을 業  苦痛 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정도가 아니다 는 것 이다...
부활은 하늘과 땅의  통합 (統合) 이요/ 동시에  하늘과 땅의  재결합(再結合) 이다.
부활 은 죄 罪와 죽음의체제 (體制)에서 해방(解放)되어  하나님의 義 와 生命을 사는 것이다.
인간이 하늘의 신을향해 올라가는 상승운동/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는 하강운동.
인간의 관심사와 질문에 답변            /  인간의 관심사와 질문을 뒤엎어 엎음.
교리와 윤리와제도로 사람을통제        / 사람을억압하고 지배하는 모든것으로 부터의 해방.
인간의 종교성과 구원욕망에 뿌리 내리고있음/ 인간의 종교성과 구원욕망을 산산히 깨 부슴.
내가 믿음을 휘둘름                        / 겸허히 믿음에머무름.
인간의 자기 초월을 위해 나아감            / 인간이 자기 회복을 위해 나아감 
현세 기복적이나 현세 도피적임             / 현세를 초월 함으로써  현세를 긍정함
인간이지혜를 발견하고 터득하는것에 의지함/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행위를 경험하는 은혜사건
                                          에 의지함
사회를 안정시키고 제도화하고 규정함     /  성령의  재창조 사건에 의지함
종교화 기독교 신앙의 뿌리 신앙의 형태 신앙의 양식/ 구원의 방식 구원의 차원 구원의 내용                                                     이 다름.

종교는 결단코 기독교(基督敎)가 될수 없다.
종교가 아무리 진화(進化)한다 해도  결탄코 기독교가 될 수가 없다  反面 基督敎는 언제나 
宗敎가 될수 있다( 금 송아지 사건 출 32장 : 대표적인 종교화)
종교의 본질(本質)은 하나님을 소유 하고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人間의시도(試圖).
                                   기독교의 종교화는 가장 근원적(根源的) 으로 타락
종교의 길을 걷게 된 원인(遠因) 으로는 
모든 인간이 안정을 필요로 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인간이 계시가 던져주는 자유(自由)를  증오 하기 에 (자크 엘륄 )“ 자유로 부터의 도피”
                                                                  “에릭  프롬”
기독교 신앙의길은 이성적(理性的)인 레이더 망에  포착 되지 않으며 변증법적 긴장으로 
가득한 반면 .
종교위길은 몇가지 교리(敎理) 나 종교적규칙 (새벽기도 십일조 주일성수 등을) 지키면 됨

무지(無智)의 원인 은 이러하다.
구원의 확신과 구령의 열정 (호4:6  고전2:8 롬 102-3)
믿음과 이성의 결별(訣別) 골 2:3 3:10 벧후 3:18)
 이시대는 가히 폭팔 시대(時代) 요 지식 경영 시대 이다  그런데 지식 폭팔 에도 불구하고
人間은 여전히 無智 에 갇혀 있다.
우주의실제 에 비추어보았을 때 과학은 아주 원시적이고  유치한 수중에  머물러 있다. 
生命을 비롯해 정말 알아야 할것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 에 수준 먹고 사는 일에 급급 하고 있다/ 영적인 無智 또한 매우 심각(心覺) 하다. 그리고 이 무지가 종교(宗敎)를 종교(宗敎)의
범주(範疇)에 추락 시키고 하나님의 구원을 왜곡하고 변질시킨 또 하나의 주범(主犯) 이다
 영국의 신학자 톰 라이트(Tom light)는 말한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많은 그리스도 인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基督敎)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희망(希望)을 잘 모르고 있다.
성령(聖靈) 안에서 꾸준히 아래로 성장하며 공부하는 학도(學徒)로써의 크리스챤이 되길 
소망한다.
 끝으로, 한국 교회의 구원론(救援論) 회복(回復)을  위해 기도 하고  목사님의 건강(健康)과 

교회의 바른 뿌리내림. 및  자기자신의 성숙한 "아래로의자람"("자아의깨짐")으로 말미암아  .

성도들간의 (하나님의가족)으로써의 교회내의  "올바른 뿌리내림" (크리스챤의성숙) 을 위해 기도 한다.

 

목사님의 집필(執筆) 활동의 성령(聖靈) 의 기름부우심의 은총 (恩寵)이  가득 하길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린다.   건강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 속으로 깊은 구원의 역사가 용솟음 치길 기도 드린다.
요번 동기  여러분  가정의 행복과  구원의은총을  날마다 향유 하게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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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 - 창조의 신비로움속에 놀라운 신비함에 매료되는 해방과 자유의 삶 엽산 2018.05.24 98
818 2차 말씀샘교회 오두막 강좌 file lilietoile 2018.03.08 133
817 김동건 교수의 새 책, 『예수: 선포와 독특성』 예수에 대한 감동의 대서사시 file 김성수 2018.02.09 132
816 2018겨울 어린이 꽃동산성령체험캠프 한어선 2017.11.16 99
815 선교사자녀 학비 전액지원 안내 file 시냇가에심은나무학교 2017.10.26 144
814 말씀을 묵상하며- 1 file 딸기곰 2017.10.13 133
813 재미를 알것같아 1 사슴발걸음 2017.10.08 169
812 말씀으로의 초대 file 딸기곰 2017.06.27 106
811 구원을 살라 <오두막 강좌 후기> 1 이진숙 2017.06.08 167
810 구원의 퍼즐 1 장상은 2017.06.08 123
809 작은 날개를 달다 1 단비 2017.06.08 90
808 비밀의 정원 1 딸기곰 2017.06.08 129
807 구원론을 통해 나의 삶를 열다~ 1 박선이 2017.06.08 94
806 오두막 강좌 구원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가 1 광수생각 2017.06.08 111
805 창조 구원의 새로운 경험속에서 맛보는 진리속의 진실 1 엽산 2017.06.07 91
804 구원 이해에 눈 뜨는 즐거움을 맛보다 1 임현미 2017.06.06 102
803 오두막 강좌를 마치며... 2 나비 2017.06.05 98
802 내가 알아가고 있는 구원에 대한 이해-정재선 2 피카소 2017.06.05 112
801 오두막 강좌(당신의 구원 이해, 이대로 괜찮은가?) 소감문 - 김현정 2 치로맘 2017.06.05 101
800 2017여름 어린이 꽃동산성령체험캠프 안내 한어선 2017.04.13 78
799 새해를 여는 기도문 - 이어령 정병선 2017.01.04 154
798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주말반 17기 모집안내 김대영 2016.12.29 116
797 2017겨울 어린이 꽃동산성령체험캠프 김하늘 2016.11.07 205
796 2016년 일본 후쿠오카 단기선교 안내입니다~! (8월 1일-5일) 이진환 2016.07.09 432
795 2016 여름 비전파워(오병이어) 비전캠프 [키즈/청소년/청년] 오병이어 2016.07.06 422
794 오늘 예배후 구갈 레스피아에서 해피타임!! 9 치로맘 2016.05.01 652
793 2016여름 어린이 꽃동산성령체험캠프 한어선 2016.04.18 1509
792 안녕하세요?선교사님! 박성재 2016.03.21 1605
791 칼 바르트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정병선 2016.03.12 1419
790 네팔에서 강대권 선교사 강대권 선교사 2016.03.11 1418
789 교회력에 따른 절기와 상징 색 김혜란 2016.01.13 1729
788 주현절의 의미 1 김혜란 2016.01.13 1740
787 빵집일기2- 예쁜 정화 2 김혜란 2015.12.18 1629
786 빵집일기1-미역국을 끓이는 상철이 4 김혜란 2015.12.08 1472
785 세상에 이런 일이 13 정병선 2015.10.15 1149
784 김지영/김희수선교사(캄보디아)의 선교편지 2 송희곤 2015.09.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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