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내가 들어왔고 믿어왔던 구원이 오두막 강좌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구원론과 뒤섞여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혼돈스러운 생각의 가지들이 뒤엉켜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덮어놓고 믿자라는 삶의 태도에 익숙해서일까?
물론 지금도 목사님 말씀의 십분의 일도 이해 못하지만 점점 들으면서 이거였구나 하며 성경 말씀의 퍼즐을 맞춰나가고 있다. 목사님의 강좌의 특별한 점은 모든 질문을 수용해주시고 즐겨하시며, 목사님 말씀에 반기를 들고 질문을 하여도 기꺼이 받아주신다는 점이다. 또한 파헤치기 싫어서, 귀찮아서, 무지해서 한쪽에 모셔 두었던 비밀스런 상자의 비밀을 열어 정확하게 보게 하신다.
구원은 죽은 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현재에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 죽음살이에서 생명살이로 바뀌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 후 멀게만 느껴졌던 구원이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성경을 이해하고 설교를 듣는데 에도 많은 도움이 되어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설교를 들을 때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짐을 느꼈다. 구원이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회복하여 와해된 하나님의 집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의 삶은 생명살이와는 거리가 멀다. 남편과 자식들을, 학생들을 죽음살이로 내몰고 나조차도 죽음살이에서 헤매고 있다. 참된 행위로 생명살이를 이루어가는 것, 이 또한 내 자아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언제나 함께 동행하기를 간구한다면 어찌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아니기에 쉬운 일이기도 할 것 같다.
목사님께서 사람들은 누구나 구원에 목마르며 구원에 대해 모르기에 구원 욕망이 솟구쳐서 성공, 권력, 재물, 애정 욕망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 예전에 너무 좋은 책이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권하여 스님이 쓰신 책을 읽은 일이 떠올랐다. 읽기 전 크리스천인 내가 스님의 글을 읽어도 되나 이 책을 읽고 나에게 불교의 사상이 자리 잡는 것이 아닐까 작은 두려움으로 읽었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스님이 평생을 거쳐 깨달은 도는 내가 어려서부터 듣던 목사님 말씀과 유사하다고 느꼈을 때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예수님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맹숭한 느낌이 있어 좋은 책이었지만 크게 감동적이지는 않은 책이었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이 책의 경험이 떠오르며 사람들이 추구하고 듣고 싶어 하고 깨우치려고 하는 것은 구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구원의 삶을 살지 않으면 다른 욕망으로 나타나 죽음살이로 살게 될 수밖에 없기에 더욱 붙잡아야할 과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원론 성경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부모님,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계 등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며 나의 구원살이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서 말씀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나갔던 것 같다. 내가 너무 무지했기에 구원론에 대한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며 앞으로 구원에 대한 퍼즐을 완성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구원을 널리 알리시기 위하여 주일이 아닌 평일에도 늦은 밤까지 말씀을 전하시고 혹시 말씀을 듣는 양들의 배가 주릴까 끼니와 간식도 정성껏 준비하여 먹이시며 낮은 자세로 양들을 이끄시며 몸소 구원살이를 실천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께 감사드리며 이번 강좌를 통해 게으르기만 했던 나의 믿음 생활에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빠져 세상의 평안을 누리며 구원살이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요~~~
이제 구원론 이해의 첫 걸음을 뗐으니
반은 간 셈입니다.
기존의 이해와 갈등이 있었다고 했는데 환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오두막 강좌를 열 필요가 없었겠지요..
기존의 이해에 오류와 왜곡이 심하기에 굳이 오두막 강좌를 시작한 것이고,
마땅히 고민과 갈등을 하며 씨름해야 하기에 환영합니다.
강좌와 함께 고민을 끝내지 마시고
계속 고민하며 씨름하며 탐구해가기 바랍니다.
신앙의 여정은 믿음의 탐구랍니다.
주의 은총이 함께 할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