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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09:48

사랑의 발아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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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최대 열망이요 관심사인 사랑은 과연 뭘까?

사랑을 노래한 바울은 놀랍게도 사랑을 정의하지 않았다.

사랑을 정의하기보다는 부정어로 많이 서술했다.

사랑은 달콤한 속삭임도 아니고, 뜨거운 열정도 아니며,

위대한 자기 헌신도 아니라고(고전13:1-3).

또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v.4-6).

 

짧게 요약하면,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란다.

바울의 설명이 꽤 마음에 든다.

사랑에 대한 부풀려진 환상과 허튼 낭만이 뿌리 뽑힌 것 같아서 개운한 맛이 나고,

허공을 떠다니던 사랑의 에드벌룬을 땅으로 끌어내린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옳다. 사랑은 달달한 속삭임이나 키스가 아니다.

태양과도 같은 뜨거운 열정이 아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는 위대한 헌신도 아니다.

단지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바울의 설명이 옳은지 한 번 확인해보자.

내가 A에게 화를 잘 낸다고 해보자.

B에게는 화를 잘 내지 않는데, A에게는 툭하면 화를 낸다고 해보자.

나는 왜 A에게 화를 잘 내는 것일까? 두 말할 필요가 없다.

A를 별것 아닌 존재로 깔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졸(卒)로 보기 때문이다.

A 앞에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든지,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이라든지,

거리낌 없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든지,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든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A를 졸로 여기기 때문에 함부로 행하는 것이다.

만일 A를 존귀하게 여긴다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쉽게 화내거나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참고 인내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다시 묻자. 나는 왜 A를 졸로 보는 것일까?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무식해서일 수도 있고, 가진 것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천박하게 처신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A를 졸로 여기는 근본 배경은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다 해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결코 무례히 행치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와의 약속을 쉽게 어기지도 않을 것이고,

뻔뻔하게 나의 유익만을 구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옳다. 사람이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사람을 존귀하게 대접함’으로 바꾸어도 말이 통한다.

그 사람을 존귀하게 대접하면 그에게 오래 참게 되고, 온유하게 되며,

자랑하지 않게 되며, 교만하지 않게 되며, 무례히 행치 않게 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게 되며, 성내지 않게 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을 졸로 보면 아무리 교만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교만하게 되지만,

상대방을 우주의 왕처럼 존귀한 존재로 보면 애쓰지 않아도 교만하지 않게 된다.

성내지 않게 되고, 자랑하지 않게 되고, 교만하지 않게 된다.

결국 사랑은 행위보다 앞선다. 행위이기 이전에 사람을 보는 눈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랑이 좌우된다.

사람을 존중하는 눈, 한 사람을 우주의 왕으로 바라보는 눈이 사랑의 발아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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