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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에서 우리의 예상과 어긋나는 말을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자체로 거룩한 말씀, 행위, 사물을 알지 못한다.

그것들은 부정(否定)으로서 한 분 거룩하신 자를 지시하는 말씀, 행위, 사물일 뿐이다.”(로마서. 157쪽)

말이 좀 어렵다. 쉽게 말해보자.

교회의 어떤 것도 하나님이 약속하고 성취하신 실재(reality)가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킬 뿐이지,

그것도 부정의 방식으로 가리킬 뿐이지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옳다.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것을 소유하지 못한다.

당연히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다.

오직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알 뿐 하나님 그분을 알지는 못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알 수 있는 하나님, 교회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나사렛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이 아니다.

생경하게 들릴지 모르나 이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한 채 교회가 하나님의 것을 소유한 양 행세한다.

교회가 구원을 베풀 수 있는 양, 교회의 강단이 하나님의 말씀인 양,

목사의 신분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양, 목사의 축복이 곧 하나님의 축복인 양,

교회의 물건은 다 성물인 양 떠벌이고 행세한다.

교회의 어떤 것도 하나님이 약속하고 성취하신 실재(reality)가 아닌데 실재인 양 떠벌이고 행세한다.

바르트는 교회의 이런 현상에 대하여 단도직입으로 말한다.

 

“그것(그리스도교적인 어떤 것)이 빈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내용이 되려 하고,

오목한 것이 아니라 볼록한 것, 부정이 아니라 긍정,

결핍의 아쉬움과 소망의 표현이 아니라 소유와 존재의 표현이 되려 한다면,

그런 존재는 인간적인 부속물이요 위험한 종교적 잔재요 안타까운 오해에 그칠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변하여 ‘그리스도인-교’가 된 것이며,

부활의 이편에서 자기 안에 폐쇄된 채 흔들리는 이 세상의 현실과 평화조약을 맺거나

기껏해야 잠정협정을 체결한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로마서. 157쪽)

 

옳다.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교’는 엄격히 다르다.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교’는 외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으나 이 둘은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는 반면

‘그리스도인-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에 집중한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의 필요와 욕망을 채워주는 일,

위로와 격려를 제공하는 일에 집중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증명하고 내세우며

교회의 힘을 강화하고, 교회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에 집중한다.

바르트가 말한 대로 이런 ‘그리스도인-교’는

하나님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종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교’는 거의 언제나 ‘그리스도인-교’로 추락하곤 했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봐도 대부분이 ‘그리스도인-교’에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경우 목사의 입신양명과 교회의 크기가 한 묶음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더욱 증폭되고 강화된 측면이 많다.

‘그리스도-교’에 충실해서는 교회 성장에 한계가 있으니까

교회성장을 위해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동일시했고,

교회성장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믿고 전심으로 매진했다.

세상을 적대시하며 교회성장에 몰입했고,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진리를 앞세워 타종교를 경멸하고 경쟁하며 싸웠다.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인-교’에 충실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리스도-교’를 자처하고 행세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수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인-교’의 길을 충성스럽게 갈 것이다.

믿음과 사명의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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