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logo

서브이미지
subtitle
2018.03.12 18:34

절망은 나의 힘

조회 수 78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는 어제 주일예배에서 인간에 대해 절망한지 오래 됐고,

교회에 대해 절망한지 오래 됐다고 말했다.

좀 더 직접적으로는 나 자신에게 절망한지 오래 됐다고 말했다.

 

분명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교회 창립을 감사하는 예배에 적절한 말도 아니다.

사람에 따라 냉소와 체념의 일갈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절망은 냉소나 체념과는 거리가 있다.

포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과도 그 괘가 다르다.

나의 절망은 냉철한 현실에 의해 강요된 내려놓음이요

수많은 실망의 과정을 거친 끝에 도달한 새로운 세계 이해의 지평이다.

인간과 교회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를 내려놓기 위한 욕망의 비움이고,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과 교회의 현실을 긍정하고 보듬어내기 위한 이해의 비움이다.

 

이 절망은 하루아침에 돌연히 엄습하지 않았다.

실망에서 절망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무척 고통스럽고 힘겨웠다.

혼자서 온 세상과 싸워야 했고, 세상보다 더 큰 나와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에서 나는 발견했다.

실망과 절망은 비슷한 듯 다르다는 것을.

 

실망은 번번이 삶의 에너지를 앗아가고 마음의 평화를 흩트려 놓는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한다.

상대에 대한 혐오와 거부의 감정을 배태한다.

절망은 이와 다르다.

절망은 실망과 달리 흐트러진 평화를 추스른다.

상대에 대한 혐오와 거부의 감정을 가라앉힌다.

마음의 에너지가 부유(浮遊)하고 유출하는 것을 막아준다.

실망에 가려진 근원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준다.

실망으로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심히 놀라운 역설이다.

 

나는 인간에 대해 절망함으로써 인간을 품는다.

교회에 대해 절망함으로써 교회를 붙든다.

나에 대해 절망함으로써 나를 받아들인다.

나는 절망함으로써 존재에의 용기를 얻고,

절망함으로써 목회적인 삶의 에너지는 얻는다.

절망은 나의 힘이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2 바울 복음의 특징 정병선 2018.07.17 11
341 우리의 대화가 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까닭 2 정병선 2018.06.08 83
340 자초하는 불행 정병선 2018.05.31 89
339 예수님과 함께라면 불만 제로? 정병선 2018.05.24 57
338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세계 정병선 2018.05.07 81
337 말의 오류, 말의 폭력, 말의 능력 정병선 2018.05.05 59
336 한반도의 전쟁이 끝났다 정병선 2018.04.28 62
335 고통을 환영하라 정병선 2018.04.16 66
334 구원, 외적 성취가 아닌 내적 성장 정병선 2018.04.13 59
333 구원은 우리 안에서 자라야 정병선 2018.04.13 43
332 진정한 주체 정병선 2018.04.03 57
331 월요일 아침의 기도 정병선 2018.04.02 57
330 생각의 게으름 정병선 2018.03.23 50
» 절망은 나의 힘 정병선 2018.03.12 78
328 인간성의 요체 정병선 2018.03.08 56
327 나는 하나님 앞에서만 정병선 2018.03.06 46
326 교회는 정병선 2018.03.01 82
325 천국과 지옥, 그리고 현실 정병선 2018.02.19 61
324 말씀샘교회와 교회 역사 정병선 2018.02.07 71
323 유유상종 정병선 2018.01.27 6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