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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염려하고 있다.

교회는 많지만 교회다운 교회는 드물다고.

설교는 쏟아지지만 들을 말씀을 찾기가 홍수에 마실 물을 찾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도구화하는 교회는 많지만 말씀의 도구가 되는 교회는 희귀하다고.

말씀으로 상향성의 길을 추동하는 교회는 많지만

말씀에 이끌려 하향성의 길을 가는 교회는 적다고.

 

아는 대로 교회의 경전인 성경은 매우 독특한 책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역사를 이해하는 지평이 세상의 여느 책과는 많이 다르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세상은 인간의 가능성과 역사의 진보를 꿈꾸고 말하나 성경은 인간의 불가능성과 비참함, 역사적 진보의 한계와 심판, 그리고 종말론적 희망을 증언한다.

세상은 인간의 도덕적 개선을 말하나 성경은 새로운 피조물 됨을 말한다.

세상은 유토피아를 꿈꾸나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린다.

세상은 소유와 영광과 지배를 욕망하나 성경은 존재와 고난과 섬김을 요청한다.

세상은 하늘과 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나 성경은 하늘과 땅을 유기적인 하나로 본다.

또 성경은 눈에 보이는 세계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역사의 세계뿐 아니라 역사 너머의 세계까지,

육체적인 죽음 이전의 세계뿐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세계까지를

통전적으로 본다.

한 마디로 성경은 세계와 역사를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 본다.

하여, 성경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이처럼 독특한 책의 공동체다.

즉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세상이 경험하지 못하는 생명살이를 하도록 이끄는 책의 공동체다.

그런데 그런 공동체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지향점이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추구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어찌 되겠는가?

종교적 위용이 대단하고 기적을 행하고 훌륭한 평판을 얻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하더라도,

예수를 믿으면 더 많은 소유와 더 큰 영광과 더 강한 힘과 지배력을 얻는다고 강변한다면,

예수님이 약속하지 않은 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약속한다면,

세상에서 승리하는 법이나 처세술을 설교한다면,

세상의 정치나 문화나 경제나 복지나 교육과 경쟁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곳이 과연 주님의 교회일 수 있겠는가?

 

허나 대다수 한국교회는 바로 이 길, 주님의 교회가 아닌 길을 가고 있다.

교회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복의 통로여야 하는데,

그래야 교회는 거짓 희망에 속고 있는 자들에게 참된 희망이 될 수 있고,

물질적인 부요 속에서 영적인 기갈에 허덕이는 자들에게 참된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있는데,

교회는 엉뚱하게도 세상의 정치, 문화, 복지, 교육, 기업, 예능과 부질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몰골이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것이 교회인지 아닌지조차 분별할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말씀샘교회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역사를 배워 역사를 거슬러야 한다.

즉 화려하지 않은 교회의 길, 세상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교회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근원 진실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정직하게 듣고 전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죄의 종노릇하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도모해야 한다.

역사를 넘어서는 종말론적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작은 유익의 길이 아니라 큰 생명의 길, 하나님나라의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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