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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삶의 길(2)

2019.12.01 21:08

정병선 조회 수:184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마태복음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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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가정의 달’인 5월은 선물해야 할 일이 많은 달입니다. 자녀들 챙기고, 부모님 챙기고, 선생님 챙기고, 또 결혼하는 사람들 챙기다 보면 그러잖아도 힘든 생활에 주름살이 가는 5월입니다. 어떤 아이는 일기장에 스승의 날은 다가오는데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임, 피아노 선생님, 컴퓨터 선생님 등등 선물해야 할 선생님이 너무 많다며 골치 아프고 싫다고 했다 합니다. 참 산다는 것이 뭔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고 만든 것들인데 그게 다 골치 아픈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받아보세요.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훈훈한지 모릅니다.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주는 것으로도 부모는 자식 키우는 모든 고통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선물 하나로도 얼마든지 큰 감동과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시인 이해인 씨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선물이란 단어만 들어도 나는 늘 가슴이 뛴다. 서로 주고받는 물건뿐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진실한 우정을 나눌 때, 아름다운 책이나 자연에서 어떤 감동을 느낄 적에 누군가 [모두가 다 선물이에요!]라고 외치면 갑자기 눈이 밝아지는 환희를 느낀다. 하느님이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신 것처럼, [나도 이 세상에서 존재 자체로 작은 선물이 되어야지. 시가 되어야지.] 하고 새롭게 결심한다. 나에겐 일 년 사계절이 모두 다 아름다운 선물의 날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싶으셨던가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주만물을 선물로 주셨거든요. 모든 존재는 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하늘은 땅을 위한 선물이고, 땅은 하늘을 위한 선물입니다. 새는 숲을 위한 선물이고, 숲은 새를 위한 선물입니다. 물은 녹색식물을 위한 선물이고, 모든 녹색식물은 모든 생명을 위한 선물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한 선물이고, 자녀는 부모를 위한 선물입니다. 목사는 성도를 위한 선물이고, 성도는 목사를 위한 선물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한 선물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한 선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본래 모든 것을 서로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특별히 사람은 존재 자체로서 훌륭한 선물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고귀한 선물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선물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또한 존재 자체로 작은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생각해 보세요. 부모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습니까? 자녀는 부모에게 일거수일투족이 큰 기쁨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남긴 글입니다.

“내 나이 29살에 14시간을 기다려 첫 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의 날이었다. 37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 날은 내가 학교 가던 날보다 더 흥분이 되고 가슴이 뛰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상장을 받아왔을 때 너무 기뻐 안방에 걸어놓고 보고 또 보며 기뻐했다. 49살, 딸이 대학입학 시험을 치르던 날 그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초조할 수가 없었다. 출근을 안 할 수 없어 회사에 나와 있기는 했지만 마음은 온종일 시험장에 가있었다. 딸의 시험시간표에 맞추어 시험시간이면 기도하고 쉬는 시간에 함께 쉬면서 하루를 보냈다. 생애 중 가장 소중한 날 중 하루로 늘 기억되고 있다. 54살, 딸이 첫 월급으로 내복을 사왔던 날, 왜 쓸데없는데 돈을 썼냐며 타박을 했지만 밤이 늦도록 내복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너무도 행복했다. 58살, 딸이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딸은 도둑놈 같은 사위 얼굴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데 눈시울이 젖어오는 것을 느끼며, 이제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도 없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이것이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이 아버지가 유별난 것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똑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는 정말 부모에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반대로 부모 또한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이지요. 세상에 부모만큼 자식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식 하나 키우는 것이 결코 작은 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힘들고 고단한 짐을 기꺼이 감내하는 부모야말로 자식에게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부모와 자식 뿐 아닙니다. 만인은 만인에게 선물입니다. 생각해보면 우주 삼라만상이 삼라만상에게 선물입니다. 선물 아닌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감사하라고. 감사하라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모든 것이 선물이니 선물 받은 자로서 감사하며 살라고. 또 성경은 말합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이미 다 선물로 주셨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늘을 나는 새도 기르시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 하나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물며 사랑하는 너희들을 헐벗게 하겠느냐?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미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아시고 다 선물로 준비해 놓으셨으니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바로 이 눈을 가지고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다 주셨다는 것을 의심치 말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선물 속에 묻혀 살면서도 선물을 선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삽니다. 예전에 서세원 신은경씨가 진행하던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출연해서 재미있게 묻고 답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사람에게 단어를 보여주면 상대방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서 그 단어를 알아맞히는 게임이었습니다.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왔는데 할아버지에게 "천생연분"이란 단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회심의 미소를 지은 할아버지가 할머니 곁에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 그러자 할머니가 대뜸 뭐랬는지 아십니까? "웬수" 기가 막혀 하는 할아버지가 소리 질렀습니다. "아니, 두 자 말고 넉자" 그러자 할머니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평생 웬수"

 

그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우습던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어떤 진실이 담겨있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그 짧은 순간의 말 한 마디 속에 선물의식을 상실한 인생의 현실이 들어있었습니다. 인생이 고해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여전히 선물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인생의 고해 속에서 선물의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물들이 아직도 주변에 널려 있는데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기뻐하지도 못합니다. 주님은 감사하라 했지만 감사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 했지만 끝없이 염려하며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만 내려놓으면 선물을 풀어보는 재미로 기뻐하며 살 수 있는데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선물을 선물로 보지 못한 채 불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둘째, 왜 끝도 없이 염려하며 삽니까?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들풀도 입히시고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이 어찌 너희를 입히시고 먹이시지 않겠느냐고 반문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누린 영광도 꽃 한 송이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우리 삶을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넘치게 하셨는데 왜 그 진실을 믿지 못하느냐고 하소연하십니다.

 

여러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이 이미 준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비록 힘들고 부족한 것투성이 일지라도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또 다른 현실이 보입니다. 온통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인생 현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의 눈,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인생은 힘들고 부족한 것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인생은 온통 선물 덩어리입니다. 이처럼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선물의식 속에서 살게 됩니다. 날마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면서 살게 됩니다. 충만한 존재로 살게 됩니다.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뵐은 작가로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좋은 눈은 작가의 연장 중의 하나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현실을 보는 눈, 그것이 작가에게는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단지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무릇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연장은 바로 좋은 눈입니다. 우리가 충만한 존재로 사는 비결도 역시 좋은 눈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눈을 가진 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나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과 삶이 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충만한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눈을 가져야만 예수님처럼 충만한 존재로 살 수 있습니다.

온 세상과 삶이 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은 땅을 위한 선물이고, 땅은 하늘을 위한 선물이라는 것.

새는 숲을 위한 선물이고, 숲은 새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

물은 녹색식물을 위한 선물이고, 모든 녹색식물은 모든 생명을 위한 선물이라는 것.

부모는 자녀를 위한 선물이고, 자녀는 부모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

목사는 성도를 위한 선물이고, 성도는 목사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

남편은 아내를 위한 선물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한 선물이라는 것.

이 진실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충만한 존재로의 삶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