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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움과 깨끗함의 원천

2019.07.28 15:56

정병선 조회 수:141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마태복음1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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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이런저런 일로 많이 대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왜 그렇게 사사건건 대립했을까요? 피차 성격이 안 맞아서 그런 것일까요? 피차 이해관계가 어긋나서 그런 것일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문제로 대립했겠지만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좀 달랐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내면세계가 피차 달라서, 달리 말하면 영성이 피차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이나 바리새인들이나 똑같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모세 율법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피차 영성이 다를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영성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영성은 지극히 종교적인데 비해 예수님의 영성은 지극히 일상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영성은 종교적인 영역 - 예배, 금식, 기도, 절기 지키는 것 등등 - 종교적인 영역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성은 모든 일상에 다 나타났습니다. 밥 먹고 이야기하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일상 속에 신앙이 흘러넘쳤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길가에 핀 꽂을 보면서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생각했으며, 어린 아이들 속에서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율법을 지키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섬기고 병든 자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보이는 형식을 중시하고 강조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 - 마음의 세계를 중시하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피차 달랐습니다. 겉으로 보면 예수님이나 바리새인이나 똑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해석부터 모든 것이 달랐어요.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면 모든 목사, 모든 그리스도인이 똑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고, 똑같은 말씀을 믿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다르고, 세계에 대한 이해도 다르고, 말씀에 대한 이해도 다르고, 삶에 대한 이해도 다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깊이 들여다보면 이천 년 전에 예수님과 바리새인이 달랐던 것처럼 많이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 잘 분별해야 합니다. 무조건 믿으면 안 돼요. 잘 분별하면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길을 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의 길을 가기 십상입니다.

 

2.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데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것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깨끗케 하는 정결의식을 매우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단지 위생에 속한 일이 아니고 종교적인 정결의식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으레 손목까지 완전히 물에 담근다든지, 정결한 그릇에 담긴 물을 따라서 손을 씻었습니다. 이렇게 손을 씻는 것이 밖에서 접하게 된 부정함을 씻어내는 정결의식이었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은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그릇들을 물에 담그는 규칙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바리새인들은 손을 씻는 정결의식을 매우 세심하게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 먹는 장면이 바리새인들에게 포착됐습니다.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처럼 바리새인들도 이 장면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잖아도 예수님 일당이 하는 짓거리들이 눈에 거슬릴 때가 많았는데 이참에 잘 됐다 싶은 마음에 작심하고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정결의식의 전통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마치 유대인의 정결이 그것에 달린 것처럼, 유대인의 모든 것이 그것에 매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런 행동이 퍽 가소로웠을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외면한 채 몇 가지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들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가소롭기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진짜로 사람을 더럽히는 게 뭔지 말해보시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v.11)

이것은 비유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은 설명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배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간다. 그것이 전부다. 반면에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즉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 등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v.17-20)

예, 사실입니다. 사람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 때문에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인해 더러워집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금방 압니다. 여러분 입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은 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나옵니다. 말하는 것뿐 아니라 행동하는 것, 판단하는 것도 다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말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것이 다르고, 판단하는 것이 다릅니다. 마음이 은혜로 가득하면 모든 것이 은혜로 보이고 은혜스럽게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두우면 모든 것이 어두워 보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보세요.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부정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삐딱하게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들의 마음이 삐뚤어져 있으니까 예수님을 삐딱하게 본 겁니다. 저들의 마음이 빨갛게 물들어 있으니까 세상만사를 빨갛게 본 겁니다.

 

4.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에서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고 말씀하면서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라고 선포했습니다(마12:34). 그렇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쌓인 것을 입 밖으로 내놓습니다. 마음에 악한 것이 많이 쌓여있으면 악한 것이 나오고, 마음에 선한 것이 쌓여있으면 선한 것이 나옵니다. 마음에 아름다움이 쌓여있으면 아름다움이 나오고, 사랑이 쌓여있으면 사랑이 나오고, 미움이 쌓여있으면 미움이 나오고, 불행이 쌓여있으면 불행이 나오고, 행복이 쌓여 있으면 행복이 나옵니다. 마음에 쌓인 것이 별로 없으면 나올 것도 별로 없고, 마음에 쌓인 것이 많으면 많은 것이 나옵니다. 말 한 마디, 몸짓 하나, 얼굴 표정 하나도 다 마음에서 나오고, 한 사람의 인격, 개성, 의지, 정신도 다 마음의 반영입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할 때도 다른 것 때문에 심판한 게 아닙니다(창6:5).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마음이 항상 악한데 악한 마음에서 어떻게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심판하신 겁니다.

5. 결국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아주 성실하게 정결예식을 지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더럽다는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바리새인은 결코 더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저들은 매우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율법대로 매사를 삼가는 경건한 자들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의 표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저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매우 멀리 있다고 보였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보였습니다. 그래서 말씀한 겁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v.8)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요 “회칠한 무덤”이라고까지 힐난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회칠을 해놔서 미끈하고 깨끗하게 보이지만 속은 썩은 시체가 누워있는 무덤과 같은 놈들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겉과 속이 다른 놈들이라는 말입니다. 겉은 깨끗해 보이나 속은 썩은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입니다. 마음이 썩은 것, 영혼이 썩은 것, 이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요, 삶의 근본문제요, 세상의 근본 문제입니다. 사실 삶의 근원, 삶의 뿌리는 마음입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의 원천 또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다(마5:3).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이 근본 문제라는 걸 모릅니다.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존재의 어떠함이 결정되고, 삶의 모양이 결정된다는 걸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을 빼놓고 삽니다.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 밖에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삽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먹고 사는 일을 생각하고, 일에 파묻혀 삽니다. 승진을 위해서, 내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바쁘게들 삽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도 되는 건 없습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잃으면 안 됩니다. 마음을 잃는 것은 모든 걸 잃은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잃는 것은 존재의 근원을 잃고 삶의 근원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잃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다들 마음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돈은 차곡차곡 쌓이는데 마음은 속빈 강정이 되어가고요, 아파트 평수는 넓어져 가는데 마음은 좁아져 가고 있습니다. 생활은 윤택해져 가는데 마음은 피폐해져 가고, 몸은 기름기가 흐르는데 마음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삶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인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 것, 삶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내면세계가 황폐해져가고 있는 것, 이것이 오늘 한국인의 가장 큰 위기입니다. 다들 상처와 분노로 얼룩진 영혼들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사와 성도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어지러운 것도 사실은 한국교회 목사와 성도들의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6.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12:2)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예, 우리 모두는 이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짜 생명, 진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세요. 바리새인들이 그토록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율법을 따라 살았지만 결국은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았습니까. 겉은 물로 씻어서 깨끗한 듯 보였지만 마음은 한없이 더러웠지 않습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전통은 지켰지만 마음을 지키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바리새인 같은 실수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발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는 건 좋은데 헛다리를 긁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것은 좋은데 헛다리를 짚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서 헛다리를 짚는 것보다 더 큰 낭패는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성공도 할 수 있고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으면 성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사느냐 더럽게 사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마지막 날 예수님 앞에 설 때도 예수님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묻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럽게 살았느냐 깨끗하게 살았느냐를 물을 것입니다. 결국 오늘 예수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세상 모든 것이 안의 문제다.” “안이 깨끗하면 삶 전체가 깨끗하고, 안이 더러우면 삶 전체가 더럽다.”

 

서울여대 장경철 교수는 “인생이란 유통”이라고 했습니다. 예,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인생은 뭔가를 유통하며 삽니다. 자기 마음의 창고에 쌓여 있는 것을 유통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관건은 뭘 유통하며 사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좋은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 복된 것을 유통하며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길일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것을 유통하며 살기 위해서 마음을 가꾸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온갖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 마음을 가꾸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을 잃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지켜낼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것을 유통하는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