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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2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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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사람 예수는 지금까지 존재한 인간 중에 가장 온전한 인간, 가장 탁월한 인간, 가장 의로운 인간, 가장 아름다운 인간입니다. 또 한없이 겸손한 인간,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이 있는 인간,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한 인간입니다. 공자나 노자나 싯다르타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성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온전한 인간입니다.

이뿐 아니라 나사렛 사람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인간입니다.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이신 인간, 하나님의 아들이신 인간입니다. 네 복음서를 비롯해서 신약성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줄기차게 증거 합니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일곱 가지 표적을 통해 증거 합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2장),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일(4장),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친 일(5장),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일(6장),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고친 일(9장),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일(11장),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죽임 당한 일(19장)을 통해 예수가 단지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기이한 탄생 이야기, 온갖 이적과 치유 이야기, 죽은 자를 살려낸 이야기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죽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죽은 게 아니라 죽임 당했습니다. 그것도 십자가 형벌로 아주 비참하고 처참하게 죽임 당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죽으면 안 되는 분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존재와 성품에서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뜻이고,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처럼 죽음에 잡아먹힐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처음도 없고 마지막도 없는 분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이시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음에 잡아먹히면 안 됩니다. 죽음에 잡아먹힐 수도 없고, 잡아먹혀서도 안 됩니다. 죽음에 잡아먹히는 순간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게 되고, 생명의 주인이 아닌 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죽지 않아야 합니다. 죽음에 잡아먹히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게 들통나기 때문에 죽으면 안 돼요. 하나님의 아들은 무조건 죽음을 물리쳐야 합니다. 어찌됐든 죽음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기적을 행하고 온갖 질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면 뭐하겠습니까? 죽은 자를 살려내면 뭐하겠습니까?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를 말하면 뭐하겠습니까? 본인이 죽음에 잡아먹혀버리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공자나 노자나 싯다르타나 소크라테스나 다를 게 하나도 없잖아요.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비천한 존재에 불과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유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아들은 무조건 죽지 않아야 합니다. 좌우지간 죽음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죽었습니다. 죽임을 당했든 어쨌든 좌우지간 죽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이변입니다. 보통 사람이 죽는 것이야 하나도 이변일 게 없지만 예수님이 죽은 것은, 죽으면 안 되는 분이 죽은 것이기 때문에 이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한 번 해봅시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답게 죽지 않았다고 상상해봅시다. 예수님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면서 이적을 행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러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증명될까요?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데 예수님 혼자 죽지 않고 살면서 온갖 선행과 이적을 행한다면 사람들이 ‘아, 저분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단지 인정만 하는 게 아니라 아마 목숨 걸고 따를 것입니다. 어떤 의심도 없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것이고, 지금의 그리스도인보다 더 뜨겁고 담대하게 예수를 믿고 사랑할 것입니다. 예수 문하에 들어오려고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할 것입니다. 교회, 교회마다 사람들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봅시다.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는 것이 예수를 믿게 하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길 같아 보이는데 한 걸음만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그 길이 과연 유익한 길일까요? 그 길이 과연 가능한 길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길을 유익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 혼자 하나님의 아들이면 뭐하겠습니까? 온 세상이 죽음의 권세에 떨고 있고, 죽음에 잡아먹히고 있는데 혼자 죽지 않으면 뭐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고통과 슬픔과 추악함에 짓눌리며 신음하고 있는데 혼자 하나님의 아들이면 뭐하겠습니까? 혼자 거룩하고, 혼자 진리의 길을 가면 뭐하겠습니까? 온 세상이 어둡고, 온 세상이 죽음 아래서 신음하는데 ~~ 혼자 영원히 산다고 해서 기쁘고 감사하겠습니까? 어떤 의미나 희열이 넘치겠습니까?

만일에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정신병자일 겁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아주 잔인한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그 사람이 진정 온전한 인간, 의로운 인간, 아름다운 인간, 한없이 겸손한 인간,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이 있는 인간,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한 인간이라면,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영원히 사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아마 사람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 함께 죽겠지요. 혼자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보다 차라리 함께 죽는 길을 선택할 겁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왜 왔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뽐내고 폼 잡으려고 왔나요? 혼자 하나님의 아들로 살려고 왔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러 왔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고, 모든 인간이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죽음의 잔을 받아들인 겁니다. 자기가 죽어야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고, 자기가 죽어야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으니까 죽음의 잔을 받아들인 겁니다.

물론 앞에서 말했다시피 예수님은 죽으면 안 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죽음의 권세에 잡아먹히면 안 돼요. 그런데 죽으면 안 되는 분이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해야 하는 분이 죽음의 권세에 잡아먹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외통수에 몰린 겁니다. 우리가 장기를 둘 때 이리 피해도 죽고 저리 피해도 죽는 상황에 몰린 것을 외통수에 걸렸다고 하잖아요. 예수님이 꼭 그 짝입니다. 죽으면 안 되는데 죽어야만 하는 외통수에 딱 걸린 형국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죽음의 잔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하여, 예수님은 죽음의 잔을 피하고 싶었음에도 피하지 않고 묵묵히 죽음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자기 몸을 속죄의 제물로 내어줬습니다. 실로 위대한 죽음을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다 된 것일까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죽음이 필요했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어줬는데, 그렇다면 구원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고,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일단 죄 문제와 용서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죽음으로 우리 죗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죄 문제와 용서 문제는 완전하게 해결됐습니다. 하지만 죽음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값진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 죽음으로 끝났다면 그것은 죽음에 굴복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야박한 말이지만 공자의 죽음이나, 싯다르타의 죽음이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달리 말하면 죽음을 죽이진 못했다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이 성취됐다고 생각합니다. 예, 맞습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구원이 성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면에서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맞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죽음으로 죽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십자가에 죽는 것으로 끝났다면 앞에서 말한 대로 예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일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려면 죽으면 안 되는데 죽었으니까, 예수가 모든 인간 중에 가장 온전한 인간, 가장 탁월한 인간, 가장 의로운 인간, 가장 아름다운 인간, 한없이 겸손한 인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이 있는 인간, 사랑으로 충만한 인간일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일 수는 없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참 쉽지 않지요? 예수님이 놓인 상황은 정말 한없이 딱하고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죽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죽어야 합니다. 죽으면 안 되는 반드시 죽어야 돼요. 또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죽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죽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이 성취되지 않습니다. 죽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기만 해서도 안 돼요.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놓인 상황입니다. 죽으면 안 되는데 반드시 죽어야 하고,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죽기만 해서는 안 되는 참으로 딱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자, 이 상황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찌해야 이 딱하고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확증되고, 세상을 구원하는 일의 마지막 걸림돌인 죽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다.

 

여러분, 부활은 단지 죽음에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죽음에서 깨어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영적으로 제자들에게 현현하는 게 아닙니다. 부활은 죽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짓밟는 것이고, 죽음 자체를 죽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했는데(고전15:26) 부활은 바로 이 마지막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죽음을 죽이는 것이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창3:15).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발생한 모든 문제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배치된 날에도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전날 죽었고, 안식 후 첫 날 부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주간의 끝 날 죽었고, 새 주간의 첫 날 부활했습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안식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의 끝 날과 첫 날에 죽고 부활한 것일까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까요? 특별한 뜻 없이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어떤 의미의 죽음이요 부활인지를 말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한 주간의 끝 날에 죽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옛 시대(옛 창조의 시대, 옛 죽음의 시대)를 종식시킨 죽음이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예수님이 한 주간의 첫 날에 부활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한 한 개인의 부활이 아니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 시대(새 창조의 시대, 새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단지 죽음에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죽은 자가 이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닙니다. 부활은 이전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 질적으로 다른 세계가 출현한 것입니다. 시간 너머의 세계가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이고, 종말의 세계가 역사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새 창조의 시대, 새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는 첫 표적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누구도 부활시킨 적이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에녹과 엘리야는 아예 죽지 않고 승천했는데, 한 번 죽은 자는 다시 살아 돌아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에서 돌아왔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새 창조의 시대, 새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는 첫 표적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마지막 표적이고, 예수가 세상을 구원했다는 마지막 표적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의 시대, 새로운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는 첫 표적입니다. 요한은 바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그분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고 기록했노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 이야기 속에 하나님의 모든 이야기, 구원의 모든 이야기, 인간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태초의 창조와 종말의 미래가 담겨 있고, 구원의 은총이 얼마나 광대한지가 담겨 있고, 죽음의 권세를 물리친 능력이 얼마나 큰지가 담겨 있고, 종말로부터 다가오는 미래가 얼마나 기이하고 놀라울지가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예수님을 묵상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깊이 묵상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보게 될 것이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지혜를 듣게 될 것이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