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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6-세상이 뭐기에

2019.03.24 17:12

정병선 조회 수:125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에베소서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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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부활이라는 것이 인류 역사상 예수님에게만 일어난 유일무이한 사건인데다가, 부활의 현실성이 우리 앞에 온전히 도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해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것도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큰 걸림돌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세상을 허망하고 죄악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을 고해(苦海)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불타 없어질 곳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은 죄로 물든 곳이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을 곳이라고 생각하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이해합니다. 솔직히 이 세상은 행복한 일보다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훨씬 많으니까, 세상 구석구석이 불의하고 추악하고 어둡고 폭력적이니까, 세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허망하고 죄악된 곳이요, 종말의 날에 불타 없어질 곳이요, 육체를 가지고 잠깐 살 곳이지 영원히 살 곳은 아니라고 보는 것은 절반의 진실만 보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묘하고 심오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와 성도들은 그렇게 안 봅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봅니다. 절반의 진실만 봅니다. 그리고 그 관점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어떻게 읽는지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목사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라는 말씀을, 종말의 날에 지금의 하늘과 땅은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된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는 말씀도, 보이는 세계는 참된 세계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참된 세계요 영원한 세계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 땅에서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고전15:19)는 말씀도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4-6)라는 말씀도 부활의 몸이 사는 곳은 지금의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예, 대부분의 목사와 성도들은 그동안 이렇게 읽어왔습니다. 문자가 말하는 대로 지금의 하늘과 땅은 불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는 것이라고 읽어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옳은 읽기일까요? 안타깝지만 전혀 아닙니다. 백퍼센트 오독입니다. 왜 오독인지에 대해서는 뒤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우선은 오독을 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성경을 오독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성경적이지 않고 인간적이기 때문에 성경을 오독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목사와 성도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성경이 말하는 방식대로 보지 않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방식, 자기가 경험하고 이해한 방식, 앞선 선배들에게 듣고 배운 방식대로 봅니다.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두 종류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을 떠나면 들어가게 될 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영혼과 육체가 있는데, 영혼과 육체가 사는 곳은 ‘이 세상’이고, 죽은 후 영혼만 사는 곳은 ‘저 세상’이라고 말이죠. 이것이 영혼과 육체라는 인간의 구조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으니까 다들 큰 고민 없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관점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 말씀 하나하나를 그 관점을 통해 해석합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세상은 죄악된 세상이고 언젠가는 불타 없어질 세상이라는 확신이 뜨거워지고,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육체는 땅에 묻혀 썩지만 영혼은 저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는 믿음이 강화되고, 이 세상은 그저 나그네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공고해집니다. 부활에 대한 이해 또한 자꾸 꼬이고 뒤틀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늘’(heaven)과 ‘땅’(earth)을 가리켜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말하는 ‘하늘’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총칭하고(sky 아닌 heaven), 땅은 ‘보이는 세계’를 총칭합니다(sky를 포함한 현상계 전체). 그런데 성경이 이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목사와 성도들은 ‘그게 그거다’, ‘성경이 말하는 땅이 곧 이 세상이고, 성경이 말하는 하늘이 곧 저 세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게 그거 아닙니다. 세상을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나누어 보는 것과 ‘하늘’과 ‘땅’으로 구별하여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시각입니다. 전자는 플라톤의 시각이고 후자는 성경의 시각으로서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면 두 시각의 차이를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다수 목사와 성도들이 생각하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독립된 세상입니다. ‘이 세상’도 하나의 독립된 세상이고 ‘저 세상’도 하나의 독립된 세상입니다. 그 둘이 서로 섞이지 않아요. 이 세상은 물질로 가득한 세상이고 저 세상은 물질이 없는 영적인 세상으로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이 끝나야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지 않으면 절대로 저 세상으로 못가요.

반면에 성경이 말하는 하늘과 땅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립된 세상이 아닙니다. 하늘만 있는 세상, 성경은 그런 세상을 말하지 않아요. 땅만 있는 세상, 성경은 그런 세상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어 하나 된 것을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하늘과 땅이 하나인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天地)를 창조하셨다.”(창1:1)는 말씀이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두 개의 세계를 창조하시지 않았다, 하늘이라는 세상과 땅이라는 두 개의 세계를 창조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셨다, 바로 이것이 창세기 1장 1절이 말하는 메시지예요.

 

예,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과 ‘하늘’과 ‘땅’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하늘과 땅의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독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 관점으로 읽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라는 관점으로 읽지 않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관점으로 읽습니다. 성경 말씀 하나하나를 다 이 관점(틀)에 맞춰 해석합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 관점(틀)을 깨려고 하지 않아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관점을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끝끝내 이 관점을 부여잡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두 개의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이 하늘과 땅으로 분리됐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이 세상은 에덴동산 밖의 세상입니다. 하늘(heaven)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것도 엄격하게 말하면 하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늘은 지금도 땅과 함께 있거든요. 하나님이 땅을 품고 계십니다. 단지 인간이 하늘을 거부하고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이 없는 겁니다. 하늘은 있는데 인간에게는 하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하늘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이 세상은 하늘이 없는 세상입니다. 하늘은 없고 땅만 있는 세상, 땅이 전부인 세상, 땅밖에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늘 없는 세상은 엄격하게 말하면 세상이 아닙니다. 하늘 없는 세상은 반쪽 세상에 불과한데 반쪽 세상이 세상일 수 있겠습니까? 반쪽 사과는 사과일 수 있지만 반쪽 세상은 세상일 수 없습니다. 반쪽으로 갈라진 호랑이가 호랑이일 수 없고, 영혼은 없고 육체만 있는 반쪽 사람이 사람일 수 없듯이, 하늘 없는 반쪽 세상도 세상일 수 없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끈질기게 하늘 없는 반쪽 세상을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땅만 있는 반쪽 세상을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하늘만 있는 반쪽 세상을 ‘저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구조로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제대로 읽어지겠습니까? 엉뚱하게 오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성경을 오독하는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저들의 마음이 악해서 오독하는 게 아니에요. 저들의 영혼이 삐뚤어져서 오독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틀)이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절반의 진실을 절대적 진실이라고 고집하기 때문에 오독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늘과 땅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면 많은 부분이 새롭게 읽힐 것입니다.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엉킨 실타래 풀리듯 풀릴 것입니다. 완전하게 풀리지는 않겠지만 말씀의 세계가 점차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동안 오독했던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라는 말씀을 지금의 하늘과 땅은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된다는 뜻으로 읽지 않고, 하늘이 땅에 임할 때 땅이 하늘의 영향을 받아서 땅의 모든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뜻으로 읽게 됩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15:50)는 말씀도 육체는 소멸하고 영혼만 구원받는다는 뜻으로 읽지 않고, 땅만의 세계에 속한 모든 삶의 양식으로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읽게 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는 말씀도 보이는 이 세상은 참된 세상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저 세상이 참된 세상이라는 뜻으로 읽지 않고, 하늘이 없는 세계는 참된 세상이 아니고 하늘이 있는 세상이 참된 세상이요 영원한 세상이라는 뜻으로 읽게 됩니다.

 

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롬8:23),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계22:7,12,20) 같은 말씀도 ‘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관점으로 읽으면 도저히 해석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관점으로 읽으면 하늘과 땅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구원도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하늘’과 ‘땅’의 관점으로 보면 하늘이 없는 반쪽 세상을 온전한 세상, 세상다운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 세상으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땅만 있는 반쪽 세상을 하늘과 땅이 공존하는 온전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땅만 있는 세상에 다시 하늘이 임하는 것, 하늘과 땅이 맨 처음 창조될 때처럼 서로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어 하나 되는 것이 곧 구원인 겁니다. 바울이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옳습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게 아닙니다. 반쪽이 되어버린 세상, 하늘은 없고 땅이 전부인 세상을 다시금 온전한 세상, 하늘과 땅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 세상으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을 우리 몸에 적용한 것이 부활입니다. 흔히 부활을 지금의 우리 몸은 없어지고 신비한 영체(영적인 몸)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은 단지 우리 몸에 하늘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 하늘이 임하면 하늘만 임하고 끝나지 않아요. 하늘이 우리 몸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지금의 썩을 몸을 썩지 아니할 몸으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몸으로 변화시켜요. 하늘이 우리 몸에 임하면 그렇게 됩니다. 몸은 몸인데 지금과 다른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이 말을 한 겁니다. 성경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세상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이고,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만이 유일무이한 세상이라고. 만일 성경이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세상을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부활을 말했을까요? 절대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또한 예수를 부활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이 부활을 말하고,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시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이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세상이고,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세상만이 참된 세상이고 유일무이한 세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를 마치면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신 예수님이 속히 이 땅에 오신다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끝납니다. 성경의 처음과 끝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