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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갈뿐

2018.03.11 16:48

정병선 조회 수:105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빌립보서3:10-14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80311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80311_SabbathPreaching.mp3
영상다운 https://www.youtube.com/watch?v=9FBQbxTOpR8

 

   (MP3 듣기: 2018년 3월 11일 주일예배설교)

동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9FBQbxTOpR8

 

 

오늘은 말씀샘교회가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지 7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교회 창립 주일을 맞아 다시 한 번 교회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교회란 무엇일까요? 종교적 형식을 갖춘 건물일까요? 사람들이 받고 싶어 하는 복을 베푸는 곳일까요? 천당행 티켓을 배당하는 곳일까요? 지혜로운 처세술을 가르치는 곳일까요? 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곳일까요? 사회와 국가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지배이데올로기 역할을 하는 곳일까요?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 받은 구원을 살기에 힘쓰는 곳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연습하며 실행하는 곳입니다. 사실 교회는 다른 것 때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살아가고, 그 구원을 온 세상에 증거하고 드러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온 땅의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유업을 증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책무이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표입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이 책무는 매우 독특합니다. 너무나 독특해서 학교나 정부나 기업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술도 감당할 수 없고, 철학도 감당할 수 없고, 종교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말씀샘교회는 바로 이 책무를 짊어지기 위해서 7년 전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그 책무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한 순간도 잊거나 팽개치거나 외면하거나 멈추지 않고 최대한 정직하게 그 책무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살고, 우리가 받은 구원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물론 어설프고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살아내지도 못했고, 열심히 흘려보내지도 못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어설프고 부족할 것입니다. 사실 모든 시대, 모든 교회는 항상 부족한 교회, 부끄러운 교회, 한계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사실입니다. 흠 없이 온전한 교회가 지상에 있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모든 교회는 언제나 부족한 교회였습니다. 말씀샘교회도 역시 부족한 교회, 부끄러운 교회, 한계를 가진 교회로 존재할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항상 이 두 가지 근원 진실을 되새겼습니다. 첫째로 말씀샘교회는 심히 부족한 교회라는 것, 둘째로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이 책무는 매우 중요하고 심오하고 위대하고 독특하다는 것, 교회가 아니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책무라는 것, 사람의 의지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책무가 아니라는 것, 세상에 필요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되새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와 교회의 책무에 대한 두 가지 근원 진실을 항상 되새김질하면서도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책무에 집중하려 했고 집중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책무를 향해 집중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복과 책임이 이것인 줄 알고, 우리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이 책무를 짊어지고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 결코 온전하게 살아낼 수 없는 구원을 살아가기 위해 힘쓸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증언하고 증여하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에게 절망하고 교회에 절망한지 오래입니다. 저 자신에게 절망한지 오래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들여다보십시오. 교회가 하는 말과 행위를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이 아닌 것들에 목을 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살아가고 나누려 하지 않아요. 교회를 보호하고, 교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권력과 야합하기에 바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구원을 살 수 있는지를 놓고 묻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공부하지는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필요와 욕망을 채워줄까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빛이요 생명이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듣고 분별하려 하지는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려고만 대듭니다. 믿음으로 인간의 종교심을 넘어가지는 않고, 믿음으로 인간의 종교성을 부추깁니다. 믿음으로 무지를 깨우치지는 않고 믿음으로 무지를 획책합니다. 복음으로 삶을 회복시키지는 않고 복음으로 삶을 왜곡합니다.

성도들도 이런 교회에 길들여진 탓에 하나님의 구원이 아닌 것들에 목을 맵니다. 예수님 덕분에 지옥 안 간다는 사실에 안심할 뿐이지 믿음으로 지금 여기 있는 구원을 붙잡으려 하지는 않아요. 어떻게 하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구원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사는 것일까를 놓고 깊이 고민하며 묻고 기도하지 않아요. 제가 아는 그리스도인을 대충 살펴봐도 하나님의 구원을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 열 명이 채 안 될 것입니다. 대부분은 구원은 죽음 이후로 내던져놓고 먹고 사는 일에 바쁩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직장, 더 부요한 생활, 더 멋진 성공, 더 짜릿한 욕망을 좇아 열심히 뜁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아무 상관없는 일들에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참 속상하고 안타깝고 분통이 터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최고의 복은 구원인데 구원은 한쪽에 처박아놓고 엉뚱한 것에 목을 매고 동분서주하는 꼬락서니가 참 속상하고 안타깝고 분통이 터집니다. 그러나 한 편 이해가 됩니다. 왜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아무 상관없는 것들에 목을 매고 동분서주하는지가 충분히 이해돼요. 사실 하나님의 구원이 나쁜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놓기는 합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게 당장 돈 벌고, 승진하고,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고, 좋은 연줄 만드는데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산다고 해서 좋은 대학 가는 거 아니고, 구원을 산다고 해서 고속 승진이 보장되는 거 아니거든요. 오히려 승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사회생활 사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지금 당장 급하고 중요한 것은 돈 버는 것이고 좋은 대학 가는 것이지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살기 위해 힘쓰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까 묻고 토론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이 최고의 복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구원이라는 게 당장 교회 성장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교회가 성장해야 목사로서 대우도 받고, 좋은 차도 타고,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는데 구원은 별 도움이 안 되니까 구원에 별 관심을 쏟지 않는 겁니다. 구원 받으라고 소리 높여 외치기는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어요. 아니,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구원을 변질시킵니다. 예수 잘 믿으면 사람이 꼬이고 돈이 꼬인다, 예수 잘 믿으면 초고속 승진하고, 자식들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고, 좋은 연줄을 붙여준다, 이런 것이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사람들이 모이고 교회가 성장하니까,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자꾸만 하나님의 구원이 아닌 것들을 하나님의 구원인양 말하는 겁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고유한 책무는 외면한 채 엉뚱한 것에 목을 매고 동분서주하는 겁니다.

물론 말씀샘교회도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아닌 것에 목매달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 아닌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말씀에 깨어있지 않고, 근원 진실에 붙잡혀 있지 않으면 언제든 엉뚱한 것에 목매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집중하려면 깨어 있어야 돼요. 깨어서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혜와 요령을 배우고 터득하고 나눠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사는 일에서 진보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저도 그래야 하고,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구원이 풍성해지고, 우리 안에 구원이 풍성해지면 세상으로 구원이 흘러가게 됩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온전한 구원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말씀샘교회는 절대 온전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망하지 말고 이 책무에 집중하고, 이 책무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결코 온전하게 살아낼 수 없는 구원을 이해하고 살아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혜와 요령을 배우고 터득하고 나누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오두막 강좌에 성심껏 참여하여 배우고, 가족과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일에 삶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독특한 책무이고,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기 때문에 이 일에 우리의 마음을 묶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고 말한 다음 자전적인 고백을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구원의 복음을 열심히 전했는데,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얻었다거나 목표점에 다다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나를 붙드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빌3:12-14).

예, 이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붙잡힌바 된 그것을 붙잡으러 달려간 것, 받은 구원을 온전히 살기 위해 멈추지 않고 달려간 것,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려간 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바울의 믿음은 항상 현재형이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멈춤 없이 가야겠습니다. 구원을 살아야 한다는 궁극의 목표점을 향해 현재형 믿음으로 한 걸음씩 가야겠습니다.

인생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쌓는 인생’과 ‘가는 인생’ 이 중에 아름다운 인생, 값진 인생은 쌓는 인생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쌓는 인생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직 가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쌓는 교회는 아름답지 않아요. 오직 가야 합니다. 가는 교회가 아름답습니다. 말씀샘교회도 가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도 보십시오. 오직 갔습니다. 아무 것도 쌓은 것 없이 오직 갔습니다. 여러분도 오직 가십시오. 쌓지 말고 가십시오. 받은 구원을 향해 조용히 한 걸음씩 서두르지 말고 오직 가십시오. 쌓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가는 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쌓는 자는 어둠에 속한 자요, 가는 자는 빛에 속한 자입니다. 쌓는 자는 욕망에 갇힌 자요, 가는 자는 욕망에서 해방된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