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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1-구원론을 구원하라

2014.08.17 21:31

정병선 조회 수:1039

설교자 정병선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4:9-15  
음성듣기 http://www.logospringch.org/mp3/140817_SabbathPreaching.MP3
MP3다운 http://www.logospringch.org/mp3/140817_SabbathPreaching.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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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P3 듣기: 2014년 8월 17일 주일예배설교)

 

저는 스무 살에 처음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게 뭔지, 구원이 뭔지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또 성경을 공부하면서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안 것 속에 구원이 담겨 있다는 것, 그 구원이 저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났더니 그 안에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성경을 알아갈수록,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나를 알아갈수록, 세상과 인생의 어떠함을 알아갈수록 점점 더 빛을 발하는 것은 구원이었습니다. 제 안에서 점점 커지는 것 또한 구원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신앙의 여정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눈떠가는 것이었고, 구원에 눈떠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눈떠갈수록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한 구원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지고 빛나는 것인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구원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제 삶의 희망과 목표가 구원을 사는 것이 됐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구원을 살자,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을 살자, 하나님께 받은 구원을 사는 것보다 더 완전한 삶은 없다, 구원을 사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이다, 오직 이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구원은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도 구원을 희구하고, 모든 인간 또한 구원을 갈망합니다. 다른 종교가 말하는 구원과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모든 종교가 구원을 희구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구원을 말하고 희구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은 여전히 기독교 복음에 담긴 최고의 실체입니다. 구원이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목표도 아니고, 구원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 하는 것은 자칫 참된 믿음의 길에서 미끄러질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구원이 기독교 복음에 담긴 최고의 실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주고자 하신 것도 구원이고(요3:16),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주고자 하신 것도 구원이고(요4:14),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구한 것도 구원이고(마19:16),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도 그 안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요5:39), 교회가 예수님 안에서 경험하고 누리고 드러내고 증언해야 할 최고의 실체 또한 구원입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구원이 빠진 기독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몸과 같고, 태양이 식어버린 지구와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구원의 찬란함 · 구원의 영광 · 구원의 광대함에 눈 떠갈수록 한국교회가 가르치고 추구하는 구원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많이 다르다는 것, 성경이 말하는 구원에 비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것, 매우 피상적이고 종교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구원이라는 뼈아픈 진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과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달라야 하는데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기독교는 본질적인 면에서 종교가 아니거든요. 종교는 인간의 질문에 답변을 가져다주지만, 기독교는 인간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종교는 인간의 종교성과 욕망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종교성과 욕망을 정죄하는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자기 초월을 향해 나아가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의 현실로 내려오십니다. 종교는 내가 믿음을 소유하지만, 기독교는 믿음이 나를 소유합니다. 종교는 현세 기복적이거나 현세 도피적이지만, 기독교는 현세를 초월함으로써 현세를 긍정합니다. 종교와 기독교는 이처럼 정반대입니다.

 

칼 바르트는 종교를 비판한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그는 로마서 주석에서 종교야말로 최고의 죄이며 타락의 죄 곧 신인동형론적 죄이며, 종교가 열망하는 것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성욕 · 지식욕 · 다른 욕구들과 같은 반열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종교가 제아무리 평화스럽고 추앙할 만하다 할지라도 종교의 실체는 추하고 색욕적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심지어 복음은 종교의 절대 부정이며, 그리스도는 종교의 마침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옳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종교성의 부정이요 마침입니다.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달라야 합니다. 구원의 방식도 다르고 구원의 내용도 달라야 합니다. 만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닙니다. 고작해야 유사 기독교일 뿐이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기독교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 유통되는 구원은 다른 종교가 말하는 구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세우는 교리는 좀 다른 듯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한국교회가 가르치고 추구하는 구원은 다른 종교(불교, 유교, 회교)가 가르치고 추구하는 구원보다도 속물적이고 가볍고 이기적입니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철저하게 세속적 · 종교적 욕망에 편승한 구원론입니다. 자기중심적 이기심에 갇힌 구원론입니다. 속 좁은 편견과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구원론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가르치고 추구하는 구원이 이처럼 속물적이고 가볍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속물적이고 가볍고 이기적인 집단이 된 것입니다. 결국 세속적 종교적 욕망에 편승한 구원론, 자기중심적 이기심에 갇힌 구원론, 속 좁은 편견과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구원론이 한국교회를 속물적이고 가볍고 이기적인 집단으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본래 위대하고 아름답고 풍성하고 깊고 오묘하고 다채롭고 광대한 삶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힘입은 화해와 생명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서 유통되고 있는 구원에는 그런 위대함과 아름다움과 풍성함과 심오함과 오묘함과 다채로움과 광대함이 없습니다. 구원은 죽음 이후의 문제로 물러나버렸고, 개인의 문제로 쪼그라들어버렸으며, 영혼의 문제로 탈바꿈해버렸습니다. 우주와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한 구원이 쥐방울만해져버렸습니다.

 

저는 이 엄청난 왜곡과 변질의 실상을 깨닫고 십 수 년 전부터는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신약학자인 스캇 맥 나이트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신실한 부모님과 목회자들로부터 성경의 복음을 듣고 배우며 자랐는데, 나중에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복음이라고 배워온 것들에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성경이 복음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새롭게 고민하면서 깨달은 중대한 사실은, 내가 자라면서 복음이라고 배워온 것이 실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예수 왕의 복음. 14쪽)라고 했습니다. 덴마크의 종교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19세기 당시의 유럽 교회를 보면서 “기독교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독교로부터 멀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이것이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지곤 했습니다.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총체적 부실의 차원을 넘어 총체적 와해의 국면에 처해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기보다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기막힌 형국에 처해 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는 옛말처럼, 한국교회는 지금 19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한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 있기는 합니다만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행태를 보거나 끊임없이 출몰하는 추문들을 보면 총체적인 와해의 국면에 진입한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한국교회가 왜 이 지경이 된 걸까요? 보는 관점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윤리적인 타락에서부터 제도적인 것까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잘못된 신앙과 신학에 있습니다. 생각과 가치관이 잘못되면 그 사람의 행동과 삶도 잘못되는 것처럼, 교회의 모든 잘잘못 또한 신학과 신앙의 잘못에서 비롯됩니다. 신학이 잘못됐기 때문에 신앙이 잘못되는 것이고, 신앙이 잘못됐기 때문에 교회가 잘못 가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론 문제가 그렇습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믿고 따르는 구원론은 정체불명의 비성경적 구원론, 인간의 세속적 종교적 욕망과 야합한 욕망의 구원론, 교회에 들어오는 문턱을 낮춘 값싼 구원론, 천국행을 보장하는 확신의 구원론입니다.

이것은 저만의 지적이 아닙니다. 몇 년 전 ‘메가 처치’ 문제를 파헤친 신광은 목사는 최근에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아르메니아 주의와 칼뱅주의를 교묘하게 뒤섞은 ‘아르뱅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신약학자 김세윤 박사는 아예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파적 복음이라고 일갈했습니다.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도 사실상 같은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칭의와 성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종교개혁의 중심 구호인 ‘오직 은혜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칭의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라고 지적했습니다(칭의와 성화).

 

사실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은 구원을 약속해왔고, 성경이 말하지 않은 구원을 말해왔습니다. 앞으로 차근차근 말하겠습니다만, 우리가 지금껏 믿고 따른 구원론은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값싼 구원론입니다. 달라붙지 않아야 할 이물질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짓 구원론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뒤틀리고 왜곡된 구원론이 한국교회 일만 악의 근원입니다. 구원파의 구원론이 세월호 참사를 낳은 것처럼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현재의 교회를 낳았습니다.

저는 단언합니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오만한 발언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겸허히 말한다 해도 이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왜곡되고 변질된 구원론이 구원받아야 왜곡되고 변질된 구원론으로부터 성도들이 해방될 수 있고, 왜곡되고 변질된 구원론으로부터 성도들이 해방돼야 한국교회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알면서도 저는 그동안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받아야 한다’고 선문답하듯 외치기만 했지 제대로 또박또박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문제를 거론할 역량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원론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구원론에는 신론과 인간론은 물론이고, 기독론, 종말론, 교회론, 윤리론까지 다 연결되어 있어요. 신학의 모든 영역이 날줄과 씨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깊이 또한 심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구원론은 매우 예민한 문제입니다. 폭탄의 뇌관과 같습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집니다. 바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받아야 한다’고 변죽만 울렸지 본격적으로 거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해보겠다고 나서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깜냥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국교회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급박하기 때문에, 잘못된 구원론에 갇혀 신음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동안 교회에서 듣고 배운 구원이 너무 부족한 구원이고 왜곡된 구원이기 때문에 이렇게 발 벗고 나섰습니다.

 

저는 구원을 교리적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잘못된 신학에 있기 때문에 교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본래 신학은 교리가 아닙니다. 신학은 교리보다 훨씬 풍성하고 영적이고 다이내믹합니다. 때문에 저는 교리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구원 그 자체에 집중하려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세계를 정직하게 듣고 배우는 일에 집중하려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사는 일을 모색하는데 집중하려 합니다.

여러분께도 한 가지 부탁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교회 안에서 듣고 배운 것들을 다 내려놓고 빈탕(Zero Point)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아야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고, 선입견을 내려놓아야만 진실에 눈뜰 수 있으니까 그동안 교회 안에서 듣고 배운 것들을 다 내려놓고 빈탕에 서서기를 바랍니다. 빈탕에 서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정직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여정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왜 이렇게 성경에서 멀어졌는지를 살펴본 다음에 뒤틀리고 왜곡된 구원론의 실상을 세밀하게 짚어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구원론의 뜨거운 논쟁거리 몇 가지를 살펴보고, 맨 마지막에 성경이 말하는 구원-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정체를 정리하는 것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 복된 여정에 주께서 크신 은총을 부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